앱으로 소고기 직거래…미트박스, 2년새 매출 10배 늘고 110억 유치
도심 상가·낙후 지역 무대로
활력 불어넣는 '젊은 피' 역할
자금·사람 몰리며 창업 활발
마켓컬리, 빅데이터 활용 식품 '새벽배송' 장악
패브릭타임, 동대문 원단 DB화…세계로 수출
도시재생 분야서도 스타트업 40여곳 '맹활약'
[ 임현우/배태웅 기자 ]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들이 산업 생태계 곳곳에서 ‘젊은 피’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복잡한 유통구조를 혁신하는가 하면 침체한 상권과 노후 건물에 벤처들이 모여들어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
축산물 유통 스타트업인 미트박스는 육류 수입·가공업자와 식당, 정육점을 연결해주는 직거래 앱(응용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중간 유통상이 없어 고깃값이 10~30% 싸다는 입소문을 타고 거래액이 2015년 89억원, 2016년 352억원, 지난해 875억원으로 뛰었다. 각종 시세정보가 무료로 공개돼 서울 마장동 축산시장 업자들도 자주 접속한다. 이 회사는 최근 1년여 사이 소프트뱅크벤처스 등 네 개 벤처캐피털(VC)에서 110억원을 투자받았다.
몇 년 전만 해도 낙후된 지역이던 서울 익선동 한옥마을은 요즘 젊은이들로 북적인다. 변화를 이끈 주역은 서울시청도 종로구청도 아닌, 익선다다라는 스타트업이다. 이 회사는 2014년부터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투자금을 모아 동네 곳곳에 10여 개의 특색 있는 상점을 열었다. 익선동은 억대 권리금이 붙은 ‘핫 플레이스’로 탈바꿈했다.
건축도시공간연구소에 따르면 익선다다와 같은 도시재생 스타트업이 전국적으로 40여 개가 활동 중이다. 쇠락의 길을 걷던 용산전자상가와 세운상가는 국내 최대 전자·부품 유통단지라는 이점을 살려 스타트업 보육시설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식품·유통, 금융, 전통 제조업 등에서도 새로운 기회를 찾아낸 스타트업이 대거 등장했다. 오프라인 판매만 고수하던 동대문 도매상가의 원단을 해외 디자이너에게 판매한 패브릭타임에는 80여 개국에서 구매 문의가 들어오고 있다. 2015년 창업한 신선식품 배송 스타트업 마켓컬리는 2년 만에 회원 40만 명, 연간 거래액 530억원으로 급성장했다.
마켓컬리의 인기 비결은 밤에 주문하면 다음날 새벽 배달해주는 ‘샛별배송’이다. 빅데이터를 분석해 주문이 예상되는 상품을 물류창고에 미리 확보해두는 방식을 활용한다. 백화점 식품관처럼 고급·유기농·친환경 상품에 집중해 고소득층 ‘사모님’ 단골도 많다고 한다. 마켓컬리는 비슷한 서비스를 뒤이어 시작한 CJ·GS 등 대기업을 점유율 면에서 압도하고 있다.
구내식당 등의 식대 결제를 스마트폰 앱(응용프로그램)으로 대체한 벤디스는 창업 3년 만에 연간 거래액이 280억원을 기록했다. 천연칼슘 세척으로 보관기간을 2~3배 늘린 사과(칼슘사과), 특수설비로 압착해 향의 강도를 낮춘 참기름(쿠엔즈버킷) 등과 같이 수출을 겨냥한 이색 먹거리를 생산하는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도 있다.
안병익 한국푸드테크협회 회장은 “해외에선 전체 벤처 투자의 20% 이상이 푸드테크 분야에서 이뤄진다”며 “국내에도 더 다양한 식품 벤처가 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축산계 블룸버그’ ‘원단계 구글’ 도전
미트박스는 축산물 스타트업으로는 이례적으로 100억원대 투자를 유치해 주목받았다. 서영직 미트박스 대표는 “축산물 시장은 소수의 중간 유통업자가 정보를 독점하고 수급을 왜곡할 가능성이 있는 구조였다”며 “전형적인 ‘올드 인더스트리’의 유통 관행을 투명하게 바꿔간다는 점을 투자자들이 높게 평가해줬다”고 말했다. 가격 정보가 충분히 축적되면 미국 블룸버그처럼 고급 시황 분석, 시세 예측 리포트 등으로도 수익을 창출한다는 구상이다.
30대 여성인 정연미·오민지 대표가 지난해 공동 창업한 패브릭타임은 동대문 원단상가에서 사업 기회를 찾아냈다. 3000여 개 점포가 200만 종 이상의 원단을 취급하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췄는데도 상인 대부분이 중장년층이다 보니 해외는커녕 온라인 판매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 패브릭타임은 상가에서 수집한 원단 샘플을 데이터베이스(DB)로 구축하고, 상품 설명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해외 신진 디자이너들에게 판매한다.
독특한 원단을 소량 구매할 수 있도록 했더니 ‘샘플을 보내달라’는 요청이 최근 석 달 새에만 80여 개국에서 900건 넘게 들어왔다. 처음엔 시큰둥하던 상인들은 패브릭타임을 통해 판매된 자신의 원단이 보그·엘르 같은 유명 패션지에 나온 것을 볼 때마다 놀란다고 한다. 오 대표는 “지금까지 3만 건가량을 마친 원단 DB 구축에 속도를 내 최종적으로는 ‘원단계의 구글’이 되는 게 목표”라고 했다.
지방 곳곳에 창업공간
부동산 시장의 화두로 떠오른 도시재생 분야에서도 스타트업이 활약하고 있다. 서울 상도동에서 폐업한 PC방을 청년들의 공유 사무실로 바꾼 블랭크, 창신동의 빈 건물을 봉제 기술자와 예비 디자이너의 협업 공간으로 개조한 어반하이브리드 등은 도시재생 스타트업의 대표 주자로 꼽힌다. 전북 군산시는 구도심 전통시장인 영화시장의 리모델링을 도시재생 스타트업들과 함께 추진하고 있다. 스타트업은 빈 점포에 청년 창업자를 유치하고 사후 관리까지 맡는다.
윤주선 건축도시공간연구소 부연구위원은 “다양성 보존과 지역사회와의 소통을 중시하는 최근 도시재생 트렌드에서는 정부, 대기업보다 다수의 소규모 스타트업이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방자치단체도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스타트업 유치에 공을 들이고 있다. 서울시는 국내 최대 농산물 시장인 가락시장에 45개 농식품 스타트업이 입주한 ‘먹거리창업센터’를 조성했다. 용산 나진상가 15동의 ‘디지털대장간’에서는 절단기, 용접기 등 46종의 장비를 갖춰 놓고 매일 70~80명의 예비 창업자에게 무료로 교육을 해주고 있다.
대구시는 동대구로를 벤처특화거리로 꾸미기로 했고, 대전시는 KAIST와 충남대 일대에, 인천시는 인하대 인근에 스타트업 지원 시설을 조성할 계획이다. 벤처기업이 모여들어 유·무형의 다양한 경제적 효과를 창출하는 서울 테헤란로와 경기 판교처럼 ‘신(新)스타트업 메카’를 지향하고 있다.
임현우/배태웅 기자 tardi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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