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대 "정부가 우리 뒤 봐줄 것"
노조의 거세지는 촛불 청구서
강경 치닫는 민노총
"퇴직자 빈자리 정규직 채워라…1700만 촛불민심도 우리 응원"
청와대, 노골적 노조 편들기
대학의 사회적 책임 빌미로 학내 문제 과도한 개입 논란
난감한 대학들
"재정 악화 속 인건비 부담 큰데 돈줄 쥔 정부에 저항 쉽지 않아"
[ 성수영 기자 ]
“청와대 일자리수석까지 와서 총장을 만났는데 아직도 묵묵부답입니다.” “비정규직 철폐투쟁!”
16일 오전 11시 서울 신촌동 연세대 본관 1층에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공공운수노조 서경지부 관계자들과 학교 청소노동자 50여 명이 들이닥쳤다. 이들은 곧바로 바닥에 앉아 무기한 점거 농성에 들어갔다. 학교 측이 올 들어 정년퇴임한 청소노동자들 자리를 파트타임 노동자로 채웠다는 이유에서다. 이를 철회하고 다시 정규직으로 새로 고용하라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민주노총이 이런 초강경책을 꺼내든 배경에는 하루 전 청와대 고위 관계자와 김용학 총장의 비공개 회동이 있다. 반장식 청와대 일자리수석은 회동에서 ‘대학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가 구조적으로 약자일 수밖에 없는 대학에 직접 ‘청소노동자들의 요구를 수용하라’고 압박한 셈이다. 민주노총이 ‘촛불 청구서’를 들이밀자 청와대가 적극적으로 화답하고, 이에 힘을 얻은 민주노총은 점점 더 강경투쟁 노선을 걷는 모양새다.
핵심 참모 보내 ‘촛불 청구서’에 화답한 靑
서울지역 민주노총 대학지부 10여 곳은 지난 2일부터 해당 대학들의 구조조정 시도에 반발해 일제히 투쟁에 돌입했다. 연세대와 고려대에서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새로 고용된 파트타임 노동자들의 출근을 몸으로 막는 ‘출근 저지 투쟁’이 벌어졌다. 각 대학 측은 “퇴직자 자리까지 간섭하는 건 무리한 요구”라며 “등록금 동결 등으로 재정은 날로 악화되는데 인건비는 계속 올라 인력 조정이 불가피하다”고 맞섰다.
대학 측이 물러서지 않자 민주노총은 연일 ‘가두 시위’를 벌이며 정부를 압박했다. 이 요구에 고용노동부가 먼저 움직였다. 양승철 고용부 서울서부지청장과 근로감독관은 지난 5일 양측의 갈등을 중재하기 위해 연세대 부총장과 노동자 대표를 만나 의견을 들었다. 하지만 서울서부지청의 조사에도 연세대의 법 위반은 발견되지 않았다.
사태에 진전이 없자 청와대는 핵심 참모들까지 대학으로 보냈다. 지난 11일에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고려대를, 15일에는 반장식 수석과 황덕순 고용노동비서관 등이 연세대를 방문했다. 이들은 각 학교 청소노동자와 면담한 뒤 학교 측에 “고용 안정이 이뤄지도록 대책을 마련해 달라”고 요청했다.
노동계 “촛불 민심 역행 말라”
이날 민주노총 관계자들은 학교 본관 1층에서 ‘정부가 민주노총의 뒤를 봐주고 있다’고 주장하는 듯한 발언을 쏟아냈다. 처음 마이크를 잡은 민주노총 관계자는 “정부까지 나섰는데 총장은 묵묵부답이다”며 학교 측을 압박했다. 이 관계자는 “모든 학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시급을 1만원씩 줘도 불과 몇억, 몇십억이 더 들 뿐”이라며 “영세사업자들은 최저임금 인상 부담보다 임차료와 대기업의 프랜차이즈 비용이 더 부담이 되는 상황이고, 수천억원씩 적립금을 쌓아놓고 있는 연세대가 돈이 없다는 걸 믿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 8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최저임금 인상보다 더 큰 부담은 상가 임차료 부담”이라고 발언한 것과 같은 주장이다.
‘촛불 민심’을 내세워 점거농성을 정당화하는 발언도 이어졌다. 한 조합원이 “우리 뒤에는 서경지부 2300명의 조합원, 공공운수노조 17만 조합원, 민주노총 90만 조합원이 있다”며 “1700만 촛불 민심이 우리를 응원하고 있다”고 연설하자 다른 조합원들의 환호가 터져나왔다.
현실 무시한 압박, 사회 전반 확산 우려
청와대까지 가세하자 대학들은 곤혹스 러워하고 있다. 연세대 관계자는 “미화, 경비 용역에 들어가는 1인당 인건비가 신입 교직원 연봉보다 높은 상황”이라며 “청와대가 대학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기업가나 자영업자 등에 최저임금 인상 비용을 전가하는 정부의 ‘전방위 압박’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서용구 숙명여대 교수는 “9년째 등록금이 동결된 대학은 말할 것도 없고 무리한 정부 개입이 민간기업 등으로 확산될 경우 경제 전반에 큰 주름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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