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함정을 극복해낸 최고경영자(CEO)가 바로 가정용 화학용품 제조업체 ‘WD-40 컴퍼니’의 게리 리지(62)다. 이 회사는 빨간색 뚜껑, 노란색과 파란색 통 디자인의 다목적 윤활제 ‘WD-40’으로 널리 알려졌다.
성공의 역설을 뛰어넘은 CEO
리지 CEO는 자신이 나고 자란 호주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대학에서는 유통을 전공했다. 두 기업의 관리직을 거쳐 1987년 WD-40 컴퍼니 호주 자회사의 상무이사로 부임했다. 1994년 이 회사의 국제사업부 이사를 맡으면서 리지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로 이주했다. 2년 뒤 부사장으로 승진하고 1997년 마침내 CEO가 됐다.
그가 CEO로 취임했을 때 이미 WD-40 컴퍼니는 미국 시장에서 거대한 성공을 이룬 기업이었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제품 WD-40 덕이었다. 1953년 이 회사의 전신인 ‘로켓 케미컬 컴퍼니’ 연구원 세 명이 아틀라스 우주 로켓의 녹을 제거할 목적으로 화학제품을 만들었다. 40번의 실험 끝에 발견한 ‘물 치환(water displacement)’ 화학식을 따 WD-40이라 이름 붙였다. 그런데 워낙 녹을 없애고 기름때를 빼는 데 탁월한 효과를 보이자 스프레이 용기 형태로 일반 소비자에게 판매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1958년 첫 시판 이후 WD-40의 판매 분야는 자동차, 항공, 건설, 농업, 스포츠 등으로 확장됐다. 1993년 WD-40은 미국의 다섯 가구 중 네 가구, 전국의 공장·광산·건설 현장 등 사업장의 81%에서 사용됐다. 매주 판매량은 100만 개를 넘어섰다.
하지만 성공 이후 침체기가 찾아왔다. 매출도 주가도 성장이 둔화됐다. 하나의 제품으로 국내 시장을 석권했지만 지속적 성장을 위한 차기 전략은 마련하지 못한 탓이었다. 또 WD-40 컴퍼니는 수익의 거의 대부분을 주식 배당금으로 지급했다. 남아도는 자금을 마땅히 어디에 투자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2001년 미국 투자 전문지 배런스는 “WD-40은 열광적인 지지를 받는 제품이지만 주식은 그렇지 않다”며 “과거에 성공을 부른 바로 그 특성이 WD-40을 실패로 몰아넣었다”고 평가했다.
리지의 대응 방법은 대표 상품이 하나뿐이고 따분한 느낌을 주는 자사 브랜드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었다. 기능의 편리성을 인정받아 미국인의 삶의 일부가 됐지만 미래 성장을 위해선 그 이상이 필요했다. 윤활유나 녹 방지제 같은 기능을 앞세우기보다 세계 소비자들에게 회사의 제품과 관련한 ‘긍정적이고 지속적인 기억’을 만들어주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리지는 세상의 녹과 때, 냄새를 없애 사람들이 더 쾌적한 삶을 꾸리는 데 기여하겠다고 선언했다. WD-40 컴퍼니 웹사이트에는 “WD-40의 제품은 사랑하는 사람들 앞에서 당신을 영웅으로 만든다”는 소개말이 적혀 있다.
매출 10년간 두 배 늘고, 176개국 시장 진출
그는 제품의 확장성을 키우기 위해 새로운 전략들을 도입했다. 먼저 다목적 윤활제라는 단일 제품의 한계를 넘기 위해 많은 브랜드를 인수하고, 특정 집단의 수요에 맞춘 새 제품들을 내놓았다. 손 세정제, 카펫 얼룩 제거제, 욕실 청소제 등으로 브랜드를 다양화했다. 정비·건설업 등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위한 전문가 제품 라인을 꾸준히 내놓고, 자전거 마니아들에게도 체인 윤활제, 프레임 보호제 등 맞춤형 제품을 제공했다.
또 영국 호주 캐나다 말레이시아 중국 등 해외에 공장을 짓고 시장을 개척하는 데 역량을 쏟았다. 판매처를 철물점, 식료품점, 약국 등으로 다변화해 어디서나 WD-40 컴퍼니의 제품을 살 수 있게도 했다.
그 결과 WD-40 컴퍼니는 2000년대 이후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매출은 2000년 1억5270만달러(약 1600억원)에서 2009년 약 두 배인 2억9200만달러로 증가했다. 주가도 2004년부터 10년간 S&P500지수가 70% 정도 오를 때 200% 넘게 상승했다. 해외 시장에서도 적잖은 성과를 거뒀다. 현재 WD-40 컴퍼니는 176개국에 진출했다. 해외 판매 비중은 1997년 전체 매출의 20% 정도였지만 2015년에는 65%를 넘어섰다. 유럽에서 얻는 매출만 따져도 리지가 처음 CEO가 됐을 때의 총매출보다 많다.
직원 몰입도 93% 이끌어낸 리더십 전문가
리지는 《리더의 조건》이라는 책을 냈고 샌디에이고대에서 10년째 강의하는 리더십 분야 전문가이기도 하다. WD-40 컴퍼니 CEO로 있으면서 샌디에이고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하지만 학위를 위한 공부는 아니었다. 그는 대학에서 배운 것을 토대로 자신의 리더십 철학을 발전시켰다. 자기가 아니라 모든 직원들이 ‘A’를 받도록 하는 게 공부의 목적이라고 리지는 강조했다.
그가 말하는 리더십의 핵심은 직원에 대한 존중과 학습의 장려다. 리지는 400명이 넘는 직원에게 보내는 편지에 매일 그날의 인용구를 담고 “너 자신을 믿으라”고 끝맺는다. 또 사원들을 향해 “우리는 WD-40 컴퍼니 부족(tribe)”이라고 강조한다. 이 부족의 특징으로 내세우는 것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질문하고 배우는 자세다. 리지는 구성원들에게 성과를 내라고 압박하는 대신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는 ‘학습자’로서 행동하라고 독려한다.
이처럼 개개인의 자율성을 키워주는 분위기에 직원들도 화답했다. 2012년 조사에서 회사 직원들의 업무 몰입도는 93.8%로 미국 전체 기업 평균의 세 배에 달했다. 이 중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항목이 ‘WD-40 컴퍼니에서 당신은 존중받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이었다. 98% 직원이 ‘그렇다’고 답했다. 96%는 자신의 상사를 신뢰한다고 응답했다.
이설 기자 solidarit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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