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의 200년 애완견 문화 유입으로
개고기와 반려견 문화 뒤섞인 한국
반려동물 1000만 시대 '사회적 합의' 필요
[ 김보라 기자 ] ‘인류가 살아남은 것은 단순히 개 덕분인지 모른다.’
인류학자 팻 시프먼은 《침입종 인간》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호모사피엔스가 늑대개와 연합한 것이 인류 생존의 결정적 장면이라고 했다. 인간과 개는 구석기 때부터 함께 살았다. 최근 발견된 최초의 개 화석은 3만2000년 전 것이다. 신석기 농부가 아니라 구석기 사냥꾼이 개를 가축으로 키웠다.
개와 인간(사피엔스)은 함께 사냥을 했다. 개는 인간의 집과 가족과 음식을 지켰다. 개와 인간의 연합으로 인간은 최상위 포식자가 됐다. 왜 개였을까. 학자들은 개의 ‘소통 능력’에 주목했다. 개가 인간을 응시하는 시간은 늑대보다 평균 두 배나 길다. 다른 종의 수십 배다.
개는 사냥을 돕거나 남자가 사냥을 나간 동안 남은 가족을 보호했다. 인간은 개로부터 안전과 효율을 얻었고, 개는 다른 육식동물과의 경쟁에서 자유로워졌다. 인간이 나눠주는 음식을 먹고 안락한 거주지를 얻었다. 그렇게 개와 인간은 3만 년 넘게 함께했다.
개에게는 늘 직업이 있었다. 사냥하는 개, 수레 끄는 개, 양 치는 개, 집 지키는 개. 이때까지 개들은 짖고 사냥감이나 침입자를 물어야 했다. 산업혁명은 개들이 할 일을 빼앗았다. 19세기 부르주아 계급은 할 일이 없어진 개를 애완견으로 만들었다. 애완견을 갖는 일은 ‘중산층의 꿈’이 됐다. 반려동물로서의 개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됐다. 짖어도 안 되고 다른 생명체를 위협하거나 물어서도 안 되는 삶.
한국인과 개의 역사는 더 복잡하다. 집 안에서 키우기 시작한 건 불과 20여 년. 마당에서 키우던 토종 개는 좁은 집과 끈에 묶여 평생 사람이 먹던 밥을 먹었다. 주인의 뱃속으로 들어가는 일도 많았다. 얼마 전부터 200여 년 된 서구의 애완견 문화가 빠르게 유입됐다. 반려동물이란 말의 등장과 함께.
딜레마가 생겼다. “개는 개답게 기르자”고 하는 이들은 반려견 유모차, 호텔을 보며 혀를 찬다. 개를 가족처럼 돌보는 사람 옆, 누군가는 개고기를 먹는다. 삶의 동반자로 개를 키우는 이들과 인형 사고팔듯 거래하는 이들이 공존한다.
반려동물 1000만 시대. 사회적·문화적 합의를 찾아가야 할 시점에 정부는 ‘개파라치’ 제도와 맹견 관리법을 내놨다. 목줄을 2m 이내로 했는지, 맹견 8종은 입마개를 했는지 등을 신고하면 포상하는 등의 내용을 담았다.
하지만 정부도 개가 몇 마리 살고 있는지 정확히 모른다. 맹견의 수를 모르면서 단속하겠다는 것이다. 또 맹견 8종 중 개 물림 사고의 단골 종인 진돗개는 제외됐다.
서초구는 반려견이 목줄과 입마개를 벗고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를 조성하려다 “털이 날려서 안 된다”는 민원에 철회하기도 했다. 짖지도 마음껏 뛰지도 못하게 된 개. 인간과 함께한 3만2000년의 역사 중 개에게 지금은 어떤 시기일까.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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