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트렌드 '영&아트'
가격대 낮춘 시계 늘고 디자인·기술 경쟁은 더 치열
[ 민지혜 기자 ]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비롯해 다양한 채널에서 쿨한 브랜드를 찾는 게 요즘 젊은 층의 소비 특성입니다. 한 가지 방법만으로는 그들을 매료시킬 수 없습니다.”
고가 명품시계 브랜드인 오데마피게의 프랑수아 앙리 베나미아스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5일부터 19일(현지시간)까지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국제고급시계박람회(SIHH)에서 “20~30대가 명품시장의 새로운 고객층으로 떠오르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과거처럼 화려한 광고만으로는 이들의 소비를 이끌어내기 어렵다며 브랜드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다양한 채널을 통해 소통하고, 합리적 가격대의 명품을 지향하는 것 모두가 과제라고 언급했다.
매년 1월 제네바에서 열리는 SIHH는 세계 명품시계 트렌드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자리다. 올해는 세계 최대 시계박람회인 바젤월드에만 참가하던 에르메스까지 가세해 역대 최대 규모로 열렸다. 작년보다 더 많은 신제품을 쏟아낸 명품시계 업체들은 올해 젊은 층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일 전망이다.
눈높이 낮춘 명품들
올해 명품시계 브랜드들은 가격대를 낮춘 엔트리급 모델을 대거 출시했다. 최소 3000만원대 시계를 판매하는 바쉐론콘스탄틴은 1000만원대부터 시작하는 ‘피프티식스’ 시계를 올해 처음 내놨다. ‘도시의 젊은 남성이 세련되게 착용하는 시계’로 콘셉트를 잡고 스테인리스 스틸부터 골드까지 다양한 소재를 썼다. 예거르쿨트르는 올해 신제품 발표회에서 ‘폴라리스’ 시계 한 종류만을 주력상품으로 소개했다. 스틸 소재는 800만원대, 크로노그래프는 1200만원대로 엔트리급이다.
올해 창립 150년을 맞은 IWC도 다양한 소재와 모델로 젊은 층 공략에 나섰다. 2000만~3000만원대 포르투기저, 폴베버 에디션 외에도 500만~1000만원대 포르토피노, 파일럿, 다빈치 등을 선보였다. 숫자가 선명하게 보이는 래커 다이얼을 채택한 것과 전체 신제품을 한정수량만 판매키로 한 것도 ‘남다른 시계’를 찾는 20~30대 명품 소비자를 겨냥한 것이라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다이얼 크기와 스트랩(시곗줄) 소재도 달라졌다. 큼지막한 남성용 시계로 유명한 파네라이는 인기상품인 루미노르 듀에 시계를 여성들도 찰 수 있는 38㎜ 크기로 처음 선보였다. 천, 데님 등 스포티한 스트랩 소재를 사용한 것도, 스트랩 안쪽에 버튼을 달아 쉽게 줄 교체를 할 수 있게 만든 것도 젊은 층을 타깃으로 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500만원 안팎의 시계도 여럿 나왔다. 에르메스는 올해 처음 SIHH에 부스를 열고 400만~500만원대 케이프 코드 시계를 공개했다. 에르메스의 강점인 가죽 스트랩을 부각시킨 제품이다. 보메메르시에는 첫 자체 개발 무브먼트(동력장치)를 장착한 클리프톤 시계를 480만~500만원대에 판매키로 하는 등 젊은 층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다.
예술성·기술력 경쟁 치열
명품시계 업체들은 소비자 저변 확대만큼이나 기술력을 응집시킨 신제품 출시도 중시하고 있다. 얼마나 어려운 기술을 구현해냈는지, 얼마나 색다르면서 아름다운 시계를 만들었는지가 그 브랜드의 경쟁력이자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반클리프아펠은 태양을 중심으로 수성, 금성, 지구가 도는 모습을 ‘레이디아펠 플라네타리움’ 다이얼 안에 담았다. 지구 옆엔 다이아몬드로 달을 만들어 한 달(29.5일)에 한 번씩 공전하게 했다. 수성은 88일, 금성은 224일에 한 번씩 태양 주변을 한 바퀴 도는 구조다. 시간은 테두리를 도는 별똥별을 보고 읽을 수 있다.
까르띠에는 5년 동안 개발한 야심작 ‘레벨라씨옹 뒨 팬더’ 시계를 공개했다. 모래알처럼 작은 핑크골드 900개가 다이얼 안을 헤엄치듯 천천히 돌아다니는 시계다. 한가운데를 지날 때마다 표범의 얼굴 모양이 드러났다가 사라진다. 이 구슬이 움직이는 속도를 결정하는 데만 1년이 걸릴 정도로 ‘최적의 아름다움’을 찾는 데 공을 들였다고 했다.
젊은 층 확대에 나선 바쉐론 콘스탄틴도 기술력을 보여주는 예술 시계를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하늘을 나는 기구를 섬세하게 각인한 시계, 투르비용(중력으로 인한 시간오차를 줄여주는 기능)과 얇은 컴플릿 캘린더 기능을 한데 담은 시계 등을 내놨다. 지라드페리고는 시간을 소리로 알려주는 미닛리피터와 투르비용을 결합한 신제품을 출시했고, 피아제는 두께가 2㎜밖에 되지 않는 세상에서 가장 얇은 시계를 공개했다.
차별화를 위해 슈퍼카와 손잡은 브랜드도 눈길을 끌었다. 로저드뷔는 람보르기니, 피렐리와 협업한 엑스칼리버 시계를 공개했다. 실제 슈퍼카 경주에 사용했던 타이어를 한정판 시계로 제작하고 이를 구입한 소비자를 대회에 초청하는 등 차별화된 마케팅을 벌이기로 했다. 3~4월엔 화이트, 5~6월엔 블루 등 기간을 한정해 신제품 시계색을 공개키로 한 것도 ‘리미티드 에디션’을 선호하는 수요를 잡기 위해서다.
시계업체들은 올해 명품시장 경기가 좋아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아시아, 중동시장이 특히 커질 것으로 보고 이 지역 마케팅을 강화할 예정이다. 스위스시계산업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1~11월) 스위스산 시계를 가장 많이 수입한 지역은 아시아였다. 전년보다 5% 증가한 86억2690만스위스프랑(약 9조6100억원)어치를 수입했다. 같은 기간 스위스산 시계의 전체 수출액은 172억1310만스위스프랑(약 19조2000억원)으로 3.2% 늘었다. 안젤로 보나티 파네라이 회장은 “충성심 높은 고객을 위해 우리만의 제품을 내놓는 것도, 새 소비자를 찾는 것도 중요하다”며 “장기적 관점에서 차별화에 성공한 명품 브랜드가 오래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까르띠에, '미스터리 클락'의 신기한 시간 속으로
까르띠에는 국제고급시계박람회(SIHH)가 열린 스위스 제네바 팔엑스포 전시장에서 19개의 미스터리 클락(탁상시계) 전시회를 열었다. 미스터리 클락이란 시곗바늘이 마치 공중에 떠 있는 듯 정중앙에서 돌아가는 시계로, 겉으로 보기엔 어떻게 무브먼트(동력장치)와 연결됐는지 알 수 없게 만든 탁상시계를 말한다. 시곗바늘은 플래티늄, 다이아몬드 등 고가의 소재를 썼다. 1912년 처음으로 나온 미스터리 클락 ‘모델 A’는 탁상시계 양 옆 가장자리에 시계 부품을 넣어 보이지 않게 감춘 것이 특징이다. 당시로서는 무브먼트가 보이지 않게 만드는 것이 아주 어려운 일로 평가받았고. 이후 미스터리 클락은 까르띠에를 대표하는 기술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번 전시회는 총 20종의 미스터리 클락 중 19개를 한데 모아놓은 첫 전시회라는 데 의미가 있다. 오래전에 여러 나라의 왕족들이 구입해 갔기 때문에 전시회를 여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게 까르띠에 측 설명이다. 1923년과 1925년에 6점 시리즈로 제작했던 ‘포르티크 그랜드 미스터리 클락’의 첫 번째 모델도 전시했다. 골드, 플래티늄, 다이아몬드, 산호, 오닉스 등 고가의 재료를 사용했다. 주얼리 수집가이기도 했던 성악가 간나 왈스카가 구입한 제품이다. 사파이어, 다이아몬드, 골드, 플래티늄 등으로 제작한 ‘모델 A 미스터리 클락’은 1914년에 완성된 시계다. 시계 받침대 안에 부품을 넣어 양쪽 기둥을 따라 시곗바늘에 동력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제작됐다. 까르띠에 본사 관계자는 “값을 매길 수 없는 희귀한 미스터리 클락을 한자리에서 볼 기회는 앞으로도 거의 없을 것”이라며 “까르띠에의 기술력과 예술성을 보여주기 위해 오래전부터 기획했다”고 말했다.
제네바=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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