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덤핑 관세율 46.37% '폭탄'
"사업하지 말란 소리 아니냐"
공장 5곳 중 2곳 해외로 이전
세아제강도 베트남에 공장 추진
작년 인수한 미국 공장 돌려 대응
"232조 적용, 선고 기다리는 심정"
[ 박재원 기자 ] 미국 정부의 연이은 통상압박에 결국 국내 철강업체들의 ‘탈(脫)한국’ 움직임이 시작됐다. 관세 폭탄을 피하려고 미국으로 공장을 옮기거나 무관세 지역에 공장을 세워 소나기를 피하려는 고육지책이다.
◆“트럼프 뜻대로 되고 있다”
넥스틸이 국내 생산라인 5곳 중 2곳을 해외로 이전하기로 했다는 소식에 철강업계 한 최고경영자(CEO)는 “결국 도널드 트럼프 뜻대로 되고 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2016년 영업이익이 100억원에 불과한 넥스틸은 올 상반기 300억원을 투입해 미국에 공장을 세운다. 막힌 수출 길을 뚫어내기 위한 궁여지책이다. 다음달 태국 현지업체와 합작해 100억원을 추가로 들여 신공장을 설립하기로 했다. 국내 생산능력은 40%나 줄어든다. 이미 지난해 말 일부 하도급 업체와 계약을 해지했다.
넥스틸은 유정용 강관을 생산하는 중소업체다. 유정용 강관은 셰일오일 등 원유를 뽑아낼 때 쓴다. 그동안 생산량의 80~90%를 미국으로 수출해왔다. 2016년 22만t을 미국 시장에 팔아 2000억원대 매출을 올렸다. 지난해 초에는 미국의 셰일가스 개발 확대 정책으로 전례 없는 특수를 누렸다. 하지만 작년 4월 트럼프 정부가 넥스틸 제품에 부과하는 반덤핑 관세율을 24.92%로 인상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2016년 10월 반덤핑 예비판정 당시 관세율(8.04%)의 세 배로 뛰었다. 지난해 10월 2차 연례재심 예비판정에서는 46.37%로 관세율이 두 배로 뛰었다. 박효정 넥스틸 사장은 “사업을 하지 말란 소리나 다름없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수출 물량이 많다는 게 화근이 됐다. ‘울며 겨자 먹기’로 미국행(行)을 택한 이유다. 회사 관계자는 “미국 정부가 유정용강관 주재료인 열연코일을 포스코에서 구매한 가격까지 트집 잡고 있어 포스코 열연을 사용해야 하는 태국 공장도 변수가 많다”고 말했다.
◆철강업계 “좀 살려달라”
비교적 낮은 관세율(6.66%)이 책정된 세아제강도 연내 베트남 남부 동나이성에 새로 공장을 짓기로 했다. 이미 부지 매입까지 마쳤다. 무역확장법 232조 적용 등 종잡을 수 없는 트럼프 정부의 움직임에 선제대응하기 위해서다. 이휘령 세아제강 부회장은 “한국 베트남 미국 3개 생산공장이 상호보완하는 방식으로 보호무역주의에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 부회장은 “베트남 시장은 물론 미국 수출까지 염두에 둔 증산”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베트남 이외에 지난해 인수한 미국 공장을 조기 안정화해 트럼프 정부의 정책 리스크에 맞서겠다는 계획이다. 세아제강은 2016년 말 약 1000억원을 투입해 미국 휴스턴에 있는 유정용 강관 공장 두 곳을 매입했다. 연 15만t의 유정용 강관을 생산할 수 있다. 이 부회장은 “미국 공장은 물량이 적어 국내에서 수출하는 유정용 강관을 대체하기 어렵지만 점차 품질을 끌어올려 현지 시장에 대응할 계획”이라고 했다.
세아제강의 미국 시장 비중은 25%에 달한다. 트럼프 정부의 수입 제한 조치가 이뤄지면 곧바로 타격을 받는다. 이 부회장은 미국 무역확장법 232조 적용 여부에 대해 “선고를 기다리는 심정”이라고 표현했다.
위기감은 업계 전반에 퍼져 있다. 업계 대표들은 지난 15일 서울 테헤란로 포스코센터에서 열린 ‘철강업계 신년인사회’에서도 잿빛 전망을 내놨다. 김창수 동부제철 사장은 “희망찬 얘기를 해야 하는데 앞에 놓인 상황이 어렵다”며 “해외 압박이 심해지면서 무한경쟁 시대에 들어갔다”고 푸념했다. 우유철 현대제철 부회장은 “내가 들은 신년 건배사 가운데 가장 우울했다”며 “제발 철강업계 좀 살려달라”고 호소했다. 송재빈 한국철강협회 상근부회장은 “미국 정부의 압박이 극에 달한 상태”라며 “시장이 급변하면서 절실한 업체들의 움직임이 빨라질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 무역확장법 232조
수입 제품이 미국의 통상국가안보에 문제가 되면 긴급하게 수입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한 법. 추가 관세 부과, 수입물량 제한은 물론 세이프가드(긴급 수입 제한)까지 가능하다. 1980년 이후 모두 14건이 이 조항에 따라 상무부 조사가 이뤄졌지만 수입 제한 조치로 이어진 적은 없다.
박재원 기자 wonderfu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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