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가상화폐, 막는다고 될 일 아니다

입력 2018-01-22 17:39  

"가상화폐는 블록체인과 공존
거래 쉽고 안정적 플랫폼 남아
시장에 맡기고 실력을 키워야"

이준수 < 미국 앨라배마주립대 교수·경제학 >



한국의 ‘가상화폐 열풍’은 미국에서도 널리 보도될 정도로 뜨겁다. 가상화폐에 대한 평가는 인터넷이 인류에게 준 효용만큼 클 것이라는 긍정적 견해부터 과거 ‘네덜란드 튤립 파동’과 비슷하다는 부정적 견해까지 다양하다. 가상화폐는 이미 큰 사회적 이슈가 됐다. 블록체인 기술도 금융 등 다른 산업에서 채택되고 있다. 새로운 지급 수단인지, 상품인지 정체를 규정하는 일조차 어려운 새로운 기술이 급속히 현안으로 부상하면서 한국 정부가 대책에 고심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미국 금융당국이 가상화폐 대응을 시장에 맡겨놓고 있는 것은 눈여겨볼 만하다. 지난 연말 시카고선물거래소(CME)와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에 비트코인 선물 상장을 허가해 어떻게 가격 안정성을 꾀할지 살펴보며 제도권에 편입하려는 수순을 밟고 있다. 학계에선 연구도 활발하다. 얼마 전 필라델피아연방은행 소속의 젊은 경제학자 다니엘 산체스는 필자의 학교에서 개최된 세미나에서 ‘가상화폐의 경쟁’이란 논문을 발표했다. 장기적으로 가상화폐 간 경쟁이 어떻게 전개될지, 즉 경제학에서 얘기하는 균형이 어떻게 이뤄질지 경제학 모형을 통해 분석했다. 그는 5년 내에 가상화폐 이슈가 거시금융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연구 대상이 될 것이라며 “거시경제학자로서 왜 흥분되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비트코인을 ‘돌덩어리’에 비유하는 반응과는 차이가 있다.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을 지낸 벤 버냉키는 가상화폐가 기존 통화를 대체하거나 위협할 수는 없다는 견해다. 그러면서 비싼 송금 수수료 등을 매기는 기존 금융회사를 효과적으로 견제할 지렛대로 보고 있다. 또 그는 “가상화폐 경쟁에서 초기에 우위를 점하고 있는 비트코인은 아마도 수그러들 것”(포천, 2017년 10월16일자)이라고 말했다. 인터넷 초창기 브라우저 시장을 지배하던 넷스케이프가 퇴색하고, 검색 전쟁에서 야후가 뒤처진 것처럼 더 나은 기술을 가진 가상화폐가 향후 시장을 주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트코인은 처리속도 저하, 용량 제약 등의 문제를 겪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미국 실리콘밸리와 중국, 러시아 등에선 효율적이고 다양한 기능을 갖춘 가상화폐와 블록체인 시스템을 만들려는 전쟁이 소리 없이 진행되고 있다. 가상화폐 거래를 용이하게 하는 플랫폼을 어떻게 누가 먼저 효과적이며 안정적으로 구축할 것인지가 핵심이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구글이 ‘안드로이드’라는 플랫폼을 장악해 시장을 좌우하는 것처럼 말이다. 경쟁을 거쳐 소수의 가상화폐만 남게 된다면 지금의 무분별한 투자는 낭패를 볼 수 있다.

블록체인이 가져올 효용성이 인터넷만큼 커질지 알 수는 없지만, 많은 산업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그러면 블록체인 기술만 남고 가상화폐는 영향력이 줄어들 것인가. 누구도 확실한 답을 갖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가상화폐 없이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할 수는 있겠지만 한계가 따른다. 가상화폐를 얻기 위해 채굴을 하고 그 과정에서 모두가 정보를 공유해 변조·해킹할 수 없다는 장점이 생기는데 중앙시스템이 채굴 과정을 대체한다면 그런 장점이 사라진다. 지금으로선 가상화폐가 블록체인과 공존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가상화폐의 존재는 실명을 통한 세금 부과 문제 이상으로 각국 정부를 골치 아프게 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이슈는 자금의 선순환과 외환 통제에 대한 영향일 듯하다. 스티브 므누신 미 재무장관은 가상화폐가 디지털 버전의 스위스은행처럼 검은돈의 은닉처가 될 것을 우려하며 주요 20개국(G20)과 공조하려는 구상까지 밝혔다. 경제학 관점에서 볼 때 “자유로운 자본이동, 환율안정, 독자적인 통화정책의 세 가지가 동시에 달성될 수 없다”는 ‘불가능한 삼위일체 이론(impossible trinity)’을 되새겨 보면 가상화폐는 금융, 환율정책에 당장 큰 도전이 된다는 걸 알 수 있다. 가상화폐는 막는다고 될 일이 아니다. 실력을 키우고 연구하며 대응해야 할 큰 숙제다.

이준수 < 미국 앨라배마주립대 교수·경제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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