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노사정 대타협' 기회 살려야

입력 2018-01-23 18:04  

협력적 노사관계로 위기 극복해온 서구처럼
노사정 대화 살려 친노동·친기업 구도 정착
'사회적 자본' 쌓아 지속가능발전 기반 다져야

노대래 < 법무법인 세종 고문·전 공정거래위원장 >



2004년 가을 미국 워싱턴DC에서 트러스트의 저자 프랜시스 후쿠야마 스탠퍼드대 교수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한국은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빈부격차 확대와 사회적 연대 약화로 ‘신뢰 위기’에 봉착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경제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불평등, 불신, 갈등이 야기돼 사회 전체가 내부 균열에 시달릴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였다. 사회 구성원이 힘을 합쳐 공동의 목표를 효율적으로 추구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적 자본의 축적 없이 선진국이 된 나라는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노사정 대타협 없이는 지속 가능한 발전이 불가능하다”고 호소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외환위기 때인 1998년 2월 노사정위원회는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사회협약’을 타결했다. 미셸 캉드쉬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와 금융구조조정 추진을 합의했으나 노조 협조 없이는 모두 허사로 돌아갈 판이었다. 정리해고, 핵심사업 위주의 기업 구조조정, 임금체계 개편, 부동산 세제 개혁, 규제 완화, 기업 부담 경감, 정부 조직 통폐합 등 주요 현안을 망라했다. 네덜란드의 바세나르 협약(1982), 아일랜드의 사회연대협약(1987), 독일의 하르츠 개혁(2003)에 못지않았다.

유럽에서는 노사정 연대를 통해 쟁점을 타결하는 ‘코포라티즘(corporatism)’을 발전시켰다. 노동자는 투쟁을 자제하는 대신 정책 영향력을 확대시키고 사용자는 공장의 해외 이전, 단체협상보다 개별협상, 고용 유연화 등으로 노동시장 탄력성을 확보했다. 정부는 임금 인상 억제와 노동시장 규율을 통해 정치 안정과 지속 성장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노사 간 대립은 항상 있기 마련이지만, 그 대립으로 인해 경제가 정체되고 노동자들의 권익 실현도 어려워진다면 우리 모두에게 손실이 된다. 노동운동을 백안시하는 사측과 강경투쟁 일변도의 노측이 타협점 없이 방황하면 사회 안정, 미래비전, 지속성을 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노조 반대로 사회적 타협이 좌절된 기억이 많아서인지 우리는 노조만 양보하면 될 것으로 보는 경향이 짙다. 하지만 지금은 사용자 측도 녹록지 않아 보인다. 대기업은 적폐세력으로 낙인찍혔고, 중소기업은 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 탓에 기업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불평등 해소와 사회적 신뢰자본 축적 없이는 미래를 기약할 수 없기 때문에 친(親)노동정책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친노동이 반(反)기업으로 둔갑해서는 안 된다. 노사정 대타협을 통해 친노동, 친기업으로 구도 전환을 해야 한다.

노사관계처럼 이해가 얽힌 분야는 권리의무관계를 법률로 명확히 해 주는 게 좋지만 세부사항까지 법률로 정할 수 없으므로 정부가 해석규정으로 밀어붙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럴 때는 강압 대신 대화와 타협으로 유도하면 기대 이상의 성과를 낼 수 있다. 그래서 노사정 대타협이 중요하고 노사정위원회에 대한 기대가 그만큼 큰 것이다.

어떻게 코포라티즘을 형성할까. 2차 세계대전 후 서구 국가들은 위기 극복을 위해 협력적 노사관계를 활용했다. 외환위기 당시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도 “국가부도사태는 막아야 한다”며 노조를 설득했다. 패전 이후 독일은 ‘국가 재건과 수출 확대’를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총리 등이 나서 임금 인상 억제 등 노조의 동참을 호소했다.

우선은 경제 상황에 대한 인식의 공유가 필요하다. 국내외 연구기관들은 올해 세계 경제를 낙관적으로 보고 있다. 이와 달리 한국은 가계 부채와 일자리 부족 등 내재한 문제가 크다. 거시지표에 반도체 호황이라는 착시 요소가 있음을 감안해야 한다. 북핵 위협 속에 가파른 원화 절상도 걱정이다. 둘째, 시장 효율성을 유지하면서 사회 통합을 이끌어야 한다. 노사 모두 요구할 것은 요구하되 받아들일 것은 적극 수용하는 결단력이 요구된다. 셋째, 노조의 대표성을 높이고 중소기업 블루칼라의 비정규직으로부터도 지지를 받는 노조로 탈바꿈해야 한다. 청년·여성·장애인 등 취약계층의 대변인 역할도 강화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부의 적극적 리더십이 절실하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는 “노사정 대화라지만 결국 정부가 나서서 조정할 수밖에 없다”며 통합적 리더십을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의 ‘사람 중심 경제’는 노동자에게 우호적이다. 노조도 이런 절호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노대래 < 법무법인 세종 고문·전 공정거래위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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