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정현의 숨은 조력자

입력 2018-01-25 18:22  

은퇴한 ‘피겨 여왕’ 김연아는 고교 1학년이던 2006년 KB금융과 처음 광고 계약을 맺었다. 그 해 시니어 경기에 본격 출전하기 시작한 김연아는 유망주이긴 했지만, 후원사가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 인연은 이듬해 공식 후원 계약으로 발전했고 2014년 러시아 소치올림픽 무렵까지 7년 동안 이어졌다.

후원 계약 첫해에만 3억원의 지원금을 받아 훈련비 걱정을 덜게 된 김연아는 세계 최고의 피겨 선수로 빠르게 발돋움했다. 김연아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알아보고 후원에 나선 KB금융이 피겨 여왕 탄생에 큰 역할을 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물론 KB금융도 김연아가 세계 최고의 피겨 선수로 성장하면서 돈으로 환산하기 힘든 광고·홍보 효과를 얻었다.

후원사 없이 성공한 운동선수를 찾아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운동 자질을 타고 났더라도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가다듬어야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할 수 있어서다. 오랜 기간 들어가는 막대한 훈련 비용을 후원 기업 없이 감당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후원 기업이 최고 운동선수를 키운다”는 말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골프 여제’ 박세리의 성공도 든든한 스폰서가 뒷받침해준 덕분이었다. 박세리는 1995년 삼성물산과 후원 계약을 맺고 미국 여자프로골프협회(LPGA) 투어에 진출해 성공가도를 달렸다. 삼성은 당시 10년간 30억원을 지원하기로 했고, 박세리는 온 나라가 외환위기로 신음하던 1998년 한국 선수 최초로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며 화답했다.

수영의 박태환이 과거 SK로부터 많은 후원을 받은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남녀 양궁 대표팀은 30년 넘게 현대자동차 후원을 받아 세계 정상을 지키고 있다.

정현이 한국 테니스 사상 최초로 호주오픈 4강에 진출하면서 전국이 들썩이는 가운데, 그를 6년간 후원해온 삼성증권도 주목받고 있다. 삼성증권은 정현이 고교 1학년이던 2012년부터 후원해왔다. 구체적인 후원 규모는 공개되지 않고 있지만 코치와 트레이너 연봉, 해외 대회 체재비를 포함해 연간 5억원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숨은 조력자’인 삼성증권은 그러나 정현의 승리와 관련해 별다른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오히려 올해 3월 후원이 끝나는데, 계약을 연장하지 않을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승마를 후원했다가 국정 농단 사건에 휘말려 재판을 받고 있는 이재용 부회장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무성하다. 재계에서는 이런 분위기라면 선수 후원이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현과 김연아, 박세리의 성공은 기업들의 꾸준한 후원이 뒷받침된 덕분이다. 스포츠에까지 미치는 기업들의 공헌을 새삼 주목하게 된다.

김수언 논설위원 soo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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