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 기득권층 반발에도 18세기 후반 '금난전권' 폐지
상업자본 형성 기틀 마련
"은행업 20년간 막혀 있어 새 플레이어 뛰어놀게 할 것"
[ 김순신 기자 ] “무술통공(戊戌通共)에 관심을 기울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25일 한경 밀레니엄포럼에서 이현승 KB자산운용 대표가 “2018년을 무술통공의 해로 만들겠다고 했는데 금융산업에 어떤 의미를 지니고 어떻게 변화할지 궁금하다”고 질문하자 반기며 이같이 말했다.
무술통공은 1792년 정조가 편 개혁정책 신해통공(辛亥通共)을 본뜬 혁신정책이다. 무술통공은 최 위원장이 지난 24일 업무보고에서 처음으로 꺼냈다.
신해통공은 정부가 독점적인 허가를 받아야 가능했던 상거래 행위를 일반인에게 허용한 조치다. 관청 허가를 받았던 시전 상인들은 난전(일반상인)의 영업을 막을 수 있는 ‘금난전권’을 갖고 있었다. 허가받은 상인들은 난전이 점포를 차리면 때리고 쫓아냈다. 이로 인한 피해가 커지자 정조는 금난전권을 폐지하고 누구나 장사할 수 있도록 했다. 기득권을 뛰어넘고 산업을 발전시키겠다는 의지가 담긴 조치였다. 신해통공은 조선 후기 상업자본이 형성되는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 위원장은 “인터넷은행이 지난해 두 곳 출범한 걸 제외하면 은행업은 최근 20년간 새로운 진입자가 없는 산업”이라며 “새로운 진입자가 20년간 없는 산업은 한국에서 은행업이 유일하고, 은행업에 새로운 플레이어가 없는 나라 역시 전 세계에서 한국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신해통공을 본받아서 진입 규제를 줄여 새로운 플레이어들이 많이 참여해 금융업에서 경쟁이 일어날 수 있게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 위원장은 구체적으로 은행업의 인가 기준을 세분화할 뜻을 밝혔다. 그는 “증권 분야는 투자자문사, 투자일임사, 일반 증권사 등 어떤 업종의 인가를 받느냐에 따라 자본금 규제도 제각각이어서 다양한 목적과 크기의 회사들이 존재하지만, 은행업은 인가 기준이 하나여서 신규 진입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최 위원장은 “당장 시중은행 정도의 대형 금융사가 나오긴 어렵겠지만, 수요가 있다면 인가제도를 개편해 특화 금융사의 출현을 올해 안에 과감하게 유도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신성환 금융연구원장은 “금융정책에서 경쟁을 강조한 것은 사상 처음인 것 같다”며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선 업종별 규제에서 기능별 규제로의 전환 등 금융 규제의 틀이 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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