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가 투기 되면 시장은 카지노로 변할 뿐
결국 주가는 기업의 실적이란 사실 알아야
이상진 < 신영자산운용 고문 >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는 한때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였다. 한국에 소개되자마자 다들 ‘부자 아빠’가 되려고 앞다퉈 책을 샀다. 닷컴 버블이 끝났을 무렵이었을 것이다. 물론 책 저자만 부자가 됐다. 그쯤엔가 어느 금융회사 광고 카피인 “부자되세요”란 말도 빅히트를 쳤다.
부자가 되겠다는 마음은 아마 인류 역사와 더불어 있었을 것이다. 새해 벽두부터 가상화폐에서 코스닥까지 태풍이 몰아치고 있다. 너나 할 것 없이 모처럼의 기회를 놓칠세라 빚까지 얻어 아우성이다. 이 와중에 관계당국이 가상화폐 투기 방지 대책을 세웠다가 강한 반발에 한 발짝 물러섰다. 일각에서는 가상화폐 세계 최대 거래시장인 한국이 차제에 오히려 정부 주도로 육성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아무튼 언론의 표현대로 마지막 동아줄을 잡겠다고 몰려드는 인파를 강제로 해산시키는 것은 이미 불가능해졌다.
한편 때맞춰 발표된 정부의 코스닥 지원책도 바이오 주식으로 일찌감치 후끈 달아오른 시장에 애프터 버너(after-burner) 역할을 하고 있다. 이쯤 되면 시장 속성상 갈 데까지 가야 멈추는 법이다. 그런데 미국 다우지수가 금융위기 전보다 두 배로 상승하는 마당에 우리 시장이라고 언제까지 변방의 따라지 취급만 받을 수는 없다.
사실 지난 10년간 우리 증시는 선진국 시장 중에서 가장 심하게 디스카운트(저평가)받았다.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재벌의 지배구조와 북핵 문제만 가지고도 거의 30~40%는 제값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수년 전부터 기업들의 구조조정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고, 저금리 환경이 10년 이상 지속되면서 증시를 견인할 에너지가 충분히 축적됐다. 게다가 4차 산업혁명에서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이 만만치 않다는 것이 확인되면서 분위기가 급변했다. 작년 이익 기준 유가증권시장 평균 주가수익비율(PER)은 10배 내외다. 이는 미국 S&P500 PER 23배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 아주 낙관적으로 얘기하면 코스피지수가 수년 내 5000까지 간다고 해도 시비를 걸 일이 아니다.
이렇게 환경이 좋을 때 가상화폐든 코스닥이든 투자자들이 기회를 잘 살려 부자 아빠가 됐으면 정말 좋겠다. 거국적으로 봐도 부자가 많으면 세수가 늘어나고 종업원도 임금을 마음 편하게 더 받을 수 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다. 그런데 현실은 이렇게 순진하게 돌아가지 않는다. 18년 전 닷컴 버블 때도 잠시 부자가 된 사람은 있지만 끝까지 부를 지킨 사람은 극소수였다.
투자가 투기로 변질하는 순간 증시는 카지노로 변한다. 상식이지만 카지노에서 부자 된 사람은 없다. 그런데 연초 이후 폭등하고 있는 코스닥시장이 아무래도 정상궤도에서 이탈하는 조짐이다. 단기간에 폭등하는 시장은 후폭풍이 거셀 수밖에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참여자들이 벌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다. 정신없이 몇 번 먹은 것 같은데 끝나고 나면 정작 손에 쥔 돈은 몇 푼 되지 않거나 마이너스 투자자가 더 많은 장이 바로 폭등장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실망하긴 이르다. 몇 달 사이 서너 배 폭등한 종목을 놓쳤다고 땅을 칠 필요는 없다. 이유 없이 올라 간 종목은 이유 없이 제자리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여전히 돈 벌 기회가 활짝 열려 있다. 지금까지 시장은 ‘꿈은 크지만 실적이 없는(?)’ 기업의 주가가 천정부지로 상승하는 장이었다면 다음 장은 실적이 뒷받침되는 기업의 주가가 제값을 받는 장이 분명히 나타날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총아도 좋고 블록체인 수혜 종목도 좋고 굴뚝산업의 빈티지 기업도 좋다. 결국 주가는 기업의 실적이다.
돈을 벌 수 있다는 가능성은 잠시 투자자를 취하게 할 수 있지만 숙취는 아침이면 깨는 법이다. 최근 가치투자를 신봉하는 투자자조차 운수 좋으면 하루에 10~20% 먹는다고 속속 데이트레이더로 변신하고 있다. 맞다. ‘운수 좋은 날’이면 대박 난다. 다만 현진건 선생의 소설 《운수 좋은 날》로 끝나지 않기를 바랄 따름이다.
이상진 < 신영자산운용 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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