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집을 사자.”
결혼한 지 1년이 조금 넘어가던 작년 여름 우리 부부는 이렇게 의견일치를 봤다. “그래, 우리도 집을 살 때가 됐구나. 대림동 20년차 아파트 전세금 2억원을 빼면 서울 어디에 저렴한 빌라 한 채 정도는 사겠지.” 우리 부부에게 ‘내 집 마련’은 그 정도 범위였다.
우리는 새 아파트를 분양받기로 했다. 첫 집인 데다 곧 아이가 태어나는 만큼 새 집에서 새출발을 하고 싶었다. 35세가 된 남편은 “다음 전세계약 만기인 2020년 1월에 입주를 맞추려면 부지런히 청약해야 한다”며 즉각 실행에 착수했다.
그런데 고작 2억원 남짓으로 서울 새 아파트가 말이나 되나. 본격적으로 공부해보니 기우였다. 중도금 대출이란 훌륭한 제도가 있었다. 계약금만 있으면 청약이 가능했다. 물론 “평생 함께 갚아나가자”는 전제가 있었다.
분양가부터 알아봤다. 4억~5억원이면 서울 외곽이나 서울 인근 택지지구에서 아파트를 분양받을 수 있었다.
우선 서울부터 알아봤다. 하지만 서울도 서울 나름이었다. 외곽이란 말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모델하우스 몇 곳을 다니면서 실감했다. 행정구역만 서울이거나 ‘여기도 서울이었구나’ 할 만한 낯선 곳이 대부분이었다. 냉정하게 우리가 노릴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다. 하물며 당첨된 곳도 없었다.
그렇게 서울을 포기하자 선택의 폭은 넓어졌다. 서울 출퇴근이 충분히 가능한 택지지구가 많았다. 고려할 수 있는 집의 크기도 넓어졌다.
그때부터는 신문기사 대신 유명 부동산 카페를 돌아다니며 정보를 수집했다. ‘지도엔 안 나오는 군사용 철길이 뚫린다더라’, ‘사람 살만한 곳 되려면 10년은 더 기다려야 하겠더라’처럼 기사로는 접할 수 없는 이야기가 많았다. 인터넷에선 입지의 장단점을 분석해주는 고수들이 많았다.
고양 지축지구는 그맘때 새로 조성되는 택지였다. 서울과 가까운 게 끌렸다. 어떤 고수는 이곳을 서울 ‘옆세권’으로 정의했다. 지하철 3호선이 지나고 있어 강북 도심까지 20~30분 만에 이동할 수 있었다. 부부의 출퇴근 시간을 따져보니 지금보다 20분 남짓 늘어날 뿐이었다. 감당할 만 했다. 인근 삼송지구의 스타필드고양과 이케아 같은 쇼핑몰이 가깝다는 것도 장점이었다.
분양 문외한이었던 우리는 청약도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때쯤 처음 알았다. 우리는 분양이 몰릴 때를 노렸다. 들은 대로라면 청약통장이 분산될 가능성이 컸다. 또 인기가 많은 대형 건설사 아파트 대신 당첨 확률을 높일 수 있는 중견 건설사 아파트를 노리기로 했다.
인터넷 고수들은 “가점이 낮은 만큼 신혼부부 특별공급을 노려보라”고 조언했다. 유명무실한 줄 알았던 청약통장이 ‘그들만의 리그’에선 제법 경쟁력이 있을 거란 얘기였다. 자격을 찾다 보니 혼인기간이 3년 이내인 까닭에 특별공급에서도 1순위가 될 수 있었다. 배 속 복덩이도 한몫 했다. 다행인지 슬픈 일인지 모르겠지만 소득 기준도 충족했다. 부부 합산 소득이 월평균 586만원(2016년 도시근로자월평균소득 120%·가구원 3인 이하 기준)이하였고, 두 사람 가운데 누구도 488만원(도시근로자월평균소득)을 넘지 않았다.
‘지축역 한림풀에버’와 다른 중견사 아파트를 놓고 고심했다. 한림풀에버는 인근에서 가장 큰 1000가구 규모 대단지인 데다 사우나와 게스트 하우스, 어린이집 같은 커뮤니티 시설이 좋았다. 모델하우스 몇 군데를 다녀보니 눈이 조금 높아져 있었다. 전셋집의 계약 만기 시점에 맞물려 입주를 시작한다는 것도 매력 있는 부분이었다.
특히 이 아파트는 남양주 다산신도시의 대형 건설사 아파트와 분양 시기가 겹쳤다. 카페에서 언급이 많은 곳이었다. 무슨 상관인가 싶겠지만 그쪽으로 신혼부부 특별공급 수요가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자칭 분석 전문가의 의견이었다. 옛말로 어부지리, 요즘 말로는 ‘빈 집 털이’를 노릴 수 있는 셈이었다.
청약전쟁에 참전할 때 준비해야 할 무기는 생각보다 많았다. 우리가 부부라는 사실을 증명할 혼인관계증명서부터 임신진단서까지 별 게 다 필요했다. 번거로웠지만 결혼 준비할 때를 떠올리며 참았다. 그땐 더 힘들었으니까.
그런데 자칭 전문가의 예언 아닌 예언은 적중했다. 한림풀에버 신혼부부 특별공급에서 전용 72㎡에 당첨됐다. 우리가 청약한 주택형은 고양 당해지역 외에 서울 등 수도권 거주자 10가구를 모집했는데 미달이었다. 무혈입성이었다. 이게 웬 횡재야. 모델하우스에서 직접 봤던 주택형이어서 더욱 기뻤다. ‘여기는 이렇게 꾸며야지’ 하며 상상했던 곳이었으니까.
로열동은 아니었지만 11층이면 높지도 낮지도 않았다. 집 주변 녹지를 마음껏 내려다볼 수도 있으니 마음에 들었다. 청약 시도 세 번 만에 당첨되는 건 로또만큼 힘들다는데 우리 부부는 해냈다. 전략을 잘 따면 얼마든 당첨될 수 있다는 고수의 조언이 가슴와 와 닿았다.
분양가는 4억5000만원이 조금 넘었다. 절반 정도는 돈을 융통해야 했다. 걱정할 건 없었다. 경남은행에서 중도금 대출을 해줬다. 다만 대출금리가 결정되지 않은 건 부담이다. 상담 때는 3.8% 정도가 될 거라 들었다. 지난해 말 기준금리를 인상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심장이 철렁했다. 불어날 이자가 걱정됐다.
계약 이후 종종 지축에 다녀왔다. 우리 집이 들어설 곳은 어떻게 바뀌고 있는지, 땅은 어떻게 생겼는지 틈날 때마다 구경했다. 부부가 손잡고 지하철역까지 걸으며 걸리는 시간을 얼추 계산해보기도 하고 버스 노선을 알아봤다.
뉴스에서 날마다 서울 집값이 급등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니 ‘내가 잘 선택한 건가’ 하는 불안감이 생기곤 한다. 하지만 우리는 초연하다.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 한발 한발 나가면 된다. 우린 결국 서울에 입성할 것이다. 다행히 현재 프리미엄이 5000만원 이상 붙어있다. 금융위기 같은 돌발 변수가 생겨 집값이 하루 만에 수천만원 떨어진들 실거주자들에겐 무슨 상관이 있으랴. ‘처음으로 마련한 내 집’에서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는 것에 일단 만족한다.
정리=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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