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혁신=특혜', 대·중소기업 편가르기 극심
중국·일본에는 없는 '대기업 성악설' 떨쳐내야
정부 경제정책이 곳곳에서 암초를 만나고 있다. 일자리 절벽, 최저임금 후폭풍, 재건축 엇박자, 가상화폐 논란 등이 겹치며 정책 신뢰마저 잃는 형국이다. 경제주체들의 심리 위축은 지난해 4분기 마이너스 성장으로 나타났다.
정부는 규제혁신에서 돌파구를 찾겠다는 복안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혁명적 접근’을 강조하며 강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하지만 정책 결정권자들이 경제와 기업을 보는 시각부터 획기적으로 달라지지 않는 한 이번에도 공염불에 그칠 공산이 크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대립 구도로 접근하고, ‘규제혁신=재벌 특혜’라는 고정 프레임에 갇혀 있어서다. 모두가 4차 산업혁명, 융·복합을 외치지만 각론에 들어가선 번번이 제동이 걸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현대자동차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수소자동차부터 그렇다. 국토교통부 장관이 수소차를 타며 홍보를 자처했지만, 대중화를 위한 인프라 구축은 ‘대기업 특혜 시비’에 미온적이다. 충전소가 전국에 달랑 11개뿐이고, 충전소 확충 예산은 올해 고작 150억원이다. 그 틈에 일본과 중국은 대대적인 수소차 육성에 나섰다. 일본은 이미 한국을 추월했고, 중국은 2030년 수소차 100만 대가 목표다.
핀테크도 산업자본의 은행 지분을 10%(의결권은 4%)로 제한한 은산(銀産)분리 족쇄에 발목이 잡혔다. 인터넷은행 인가 특혜 시비, 대기업 사금고화 논란이 제기되자 금융당국도 발을 빼버렸다. 금융감독으로 접근할 것을 ‘대못 규제’로 틀어막아, 금융혁신 기대마저 사그라든다. 최근 논란 끝에 정부가 재검토로 돌아선 외국인 대주주 과세 강화도, 따지고 보면 내국인 대주주로부터 세금을 더 걷으려다 벌어진 해프닝이나 다름없다.
국내 벤처 생태계가 무너진 것도 대기업 배척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대기업이 국내 벤처를 인수하면 ‘문어발 확장’ ‘기술 탈취’ 등 온갖 낙인을 찍어 아예 해외로 눈을 돌리게 만들었다. 2000년대 초 중국과 이스라엘이 한국을 벤치마킹했는데, 이제는 우리가 그들을 부러워하는 처지다.
‘규제프리존’을 대기업 특혜로 치부하고, 스마트시티도 대기업은 논외다. 자본과 기술을 보유한 대기업을 배제하고 혁신을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나 다름없다. 산업·국경 간 경계가 무너지는데 시야를 비좁은 국내로 한정해 대기업·중소기업을 가르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그럼에도 정부·여당 일각에선 여전히 대기업을 ‘혼내줄 대상’쯤으로 여긴다. 대기업에 조금이라도 득이 되면 금기시하는 ‘대기업 성악설’도 만연해 있다. 그럴수록 중소·중견기업이 성장을 기피하는 피터팬 신드롬은 중증이 돼간다. 중국과 일본은 정부가 앞장서 뛰는데 한국만 낙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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