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새우 밥 먹는 소리

입력 2018-01-30 17:35   수정 2018-01-31 14:14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옛날 어부들은 조기 떼를 찾기 위해 대롱을 물속에 꽂고 귀를 기울였다. 지금도 산란철이면 대나무통으로 수컷 조기들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저마다 내는 ‘뽁뽁’ 소리가 콘서트장을 방불케 한다. 가장 큰 소리가 192데시벨(dB)이나 된다니 록 콘서트(130데시벨)보다 시끄럽다.

바닷속 생물들은 대부분 부레 근육의 수축과 이완으로 소리를 낸다. 이나 뼈 같은 딱딱한 부위를 부딪치기도 한다. 입 큰 아귀가 내는 소리는 3∼6m 떨어진 곳에서도 크게 들린다. 자동차 경적 같은 교통신호용으로 내는 소리도 있다. 뉴질랜드 근해의 빅아이라는 어종은 이동 과정에서 이탈방지를 위해 소리를 지른다.

새우 중에서도 유난히 큰 소리를 내는 종류가 있다. 우리나라 연안에서도 볼 수 있는 딱총새우는 커다란 집게발로 ‘딱딱’ 소리를 낸다. 한쪽만 불균형하게 큰 이 집게발은 엄청난 충격파로 먹이를 잡는 비밀병기다. 1000분의 1초 사이에 218데시벨의 굉음을 낸다. 그 소리가 총성 같아서 ‘딱총’이라고 한다. 서양에서는 ‘권총새우’라고 부른다. 사냥뿐 아니라 서로 소통할 때도 이런 소리를 이용한다.

모든 새우가 큰 소리를 내는 것은 아니다. 몸집이 작은 새우들은 플랑크톤을 먹고 살기 때문에 조용하지만 큰 새우들이 바다 밑바닥에 사는 갑각류 등을 잡아먹을 때는 데시벨이 올라간다. 이런 소리의 사연을 알게 된 것은 수중청음 기술 덕분이다. 과학자들은 이런 소리를 분석해 수산자원과 먹이 관리에 활용한다. 양식장에서도 이를 바탕으로 사료를 조절한다.

풀을 뜯어 먹는 새우도 있다. 잡초의 어린 싹을 먹어치우는 투구새우는 탁월한 제초 능력 덕분에 논농사의 잡초 방제에 활용된다. 일본에서는 이를 활용한 투구새우농법이 각광받고 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관상용 새우도 시금치와 케일, 뽕잎, 상추 등을 주로 먹는다.

세계 최대 농산물업체 카길이 “새우 밥 먹는 소리를 분석할 과학자를 찾는다”는 구인광고를 냈다. 새우가 사료를 먹을 때의 음향을 기록하고 분석하는 데 빅데이터와 머신러닝(기계학습) 등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농작물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인공위성 데이터분석팀까지 운영하는 이 회사가 ‘세계의 식탁을 지배하는 회사’로 불리는 이유를 알 만하다.

서양 속담에 ‘새우로 잉어를 잡는다’는 말이 있다. 적은 밑천으로 큰 이득을 얻는 것을 말한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속담에만 익숙한 우리로서는 최첨단 ‘카길 방식’이 부럽고 또 두렵다. 미래를 향한 기술 경쟁은 수중에서도 끝이 없다. 새우 밥 먹는 소리까지 분석할 정도라면, 중국 잠수함이 소음 때문에 일본 해군에 들켜 이틀 동안 쫓겨다닌 수모쯤은 웃지 못할 촌극일 수도 있겠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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