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블루문, 블러드문

입력 2018-01-31 18:08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영어 단어를 한두 가지 뜻으로만 외우면 낭패보기 쉽다. blue의 뜻이 ‘푸른(색), 우울한’인 것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blue movie는 속어(俗語)로 ‘포르노 영화(blue film)’를 의미한다. 호주 뉴질랜드에서는 blue가 거꾸로 빨강머리를 가리키기도 한다.

숙어로 블루문(blue moon)은 ‘푸른 달, 우울한 달’이 아니다. ‘매우 오랜 기간’을 뜻한다. 여기서 파생된 것이 once in a blue moon(극히 드물게)이다. <교양영어사전>에 따르면 이 말은 1528년 처음 등장했다. 화산 폭발, 큰 산불 뒤에 재가 하늘을 가리면 달이 푸른빛을 띠는데, 이런 일이 매우 드물다 해서 생겨난 비유적인 표현이다.

실제로 달이 푸르게 보인 경우도 있었다. 뭉크의 그림 ‘절규’의 배경이 된 1883년 인도네시아 크라카토아 화산 폭발 때 2년간 그런 현상이 벌어졌다. 1950~1951년 스웨덴과 캐나다의 대형 산불 때도 달이 푸른 빛을 띠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한 달에 두 번씩 뜨는 보름달을 왜 블루문이라고 할까. 이는 푸른색과 무관하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blue와 발음이 같은 고어(古語) belewe에서 와전됐다고 한다. ‘배신하다(betray)’란 뜻인데, 의미는 희석되고 발음만 남았다. 동양에선 보름달이 풍요의 상징(추석, 대보름 등)이지만, 서양에선 불길한 것(늑대인간 등)으로 인식했다. 그러니 두 번 뜨는 보름달이 반가울 리 없었을 것이다.

블루문은 한 달이 30~31일인데 달의 변화주기가 29.5일인 데서 생기는 현상이다. 짧은 2월을 제외하고 1일이 보름달이면 30, 31일에 다시 보름달이 뜰 수 있다. 19년에 7번, 2~3년에 한 번꼴로 블루문이 나타난다. 윤달 빈도와 같다.

블루문과 달리 블러드문(blood moon)은 문자 그대로 달이 붉게 보이는 현상이다. 개기월식이 일어나 지구 그림자가 달을 가려도, 빛이 완전히 차단되지 않고 산란현상에 의해 달이 붉게 보이는 것이다. 슈퍼문(super moon)은 가장 밝고 크게 보이는 보름달을 지칭한다. 달의 공전궤도가 정확한 원이 아니라 타원이어서 생기는 현상이다. 지구와 가장 가까울 때의 슈퍼문은 가장 멀 때의 미니문(mini moon)보다 14%가량 크고, 30%가량 밝다고 한다. 착시가 아닌, 실제 현상이다.

달은 45억 년 전 화성 크기의 천체가 지구에 충돌하면서 튕겨져 나간 파편들로 형성됐다고 한다. 육안 관측이 가능해 동서고금에 달에 얽힌 이야기가 많다. 어젯밤 블루문, 블러드문, 슈퍼문이 한꺼번에 겹친 우주쇼 3종 세트가 펼쳐져 또하나의 일화를 더했다. 가장 큰 보름달에다 개기월식까지 진행된 장관은 35년 만이란다. 다음 개기월식은 2025년에 있지만, 이번 같은 우주쇼는 19년 뒤에나 있다. 답답할수록 하늘을 보자.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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