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르벨 바르데츠키 지음 / 이지혜 옮김 / 와이즈베리 / 208쪽 / 1만3000원
[ 송태형 기자 ]
“일보다 사람이 힘든가? 문제는 나르시시즘(narcissism·자기애)이다.”
심리 분야 베스트셀러 《따귀 맞은 영혼》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나는 유독 그 사람이 힘들다》 등을 쓴 독일 심리학자 배르벨 바르데츠키가 30여 년간의 연구와 상담, 치료 끝에 내린 결론이다. 그는 독일 그뢰넨바흐 심인성질환 전문병원에서 10년 가까이 폭식증, 거식증 등 섭식장애와 알코올, 약물 등 각종 중독 증세를 보이는 환자들을 돌봤다. 바르데츠키는 이들의 기저에 자존감 부족과 대인관계 장애라는 두 가지 특성이 깔려 있음을 발견했다. 이런 문제들이 결국 나르시시즘 문제에서 비롯된 것임을 밝히는 학문적 연구와 저서로 큰 주목을 받았다.
독일에서 지난해 출간된 신작 《나르시시스트 리더》에선 나르시시즘이란 프리즘으로 정치·경제·사회적 현상을 들여다본다. 전작들에서 주로 개인과 여성의 내적 문제를 다뤘다면 신작에선 개인은 물론 조직과 사회를 장악해가는 나르시시즘의 부정적 측면을 집중적으로 파고든다. 트럼프, 푸틴, 에르도안 등 ‘스트롱맨’들이 자국 성장과 보호를 내세워 득세하고, 극우 정당들이 힘을 얻고, 이슬람국가(IS) 같은 테러집단 및 극단주의 조직이 세력을 확장하는 현상에 대한 저자 나름의 심리학적 분석이자 대응책이다.
저자가 보기에 ‘문제적’인 이들 리더와 조직은 자기 과시, 요란한 선동 구호, 흑백 논리 등 여러모로 나르시시즘적 성향을 강하게 드러낸다. 이런 리더나 조직이 권력을 잡게 되면 나르시시즘의 부정적인 영향이 권력 남용, 독재, 대중 통제와 사실관계 조작, 위협과 협박, 언어 및 물리적 폭력 등의 형태로 나타난다.
저자에 따르면 나르시시즘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나 지닌 성향이다. 나르시시즘이 유독 강한 ‘나르시시스트’는 근본적으로 자아존중감이 낮다. 이를 감추기 위해 외부에 강한 면모를 과시한다. 내적 불안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최고가 되고 타인의 인정을 받는 것에 집착한다. 능력·성공지향적인 이들은 일 처리나 업무 성과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달변가 유형이 많아 대중을 능숙하게 설득한다. 선봉에 나서거나 세상의 중심에서 화려한 조명을 받는 것을 즐긴다. 쇼와 화려함의 과시, 괴벽스러운 모습으로 등장하기 등 과장된 제스처를 취한다.
이런 모습은 카리스마로 포장돼 사람들 내면의 나르시시즘을 자극하고 대중을 사로잡기도 한다. 주위를 압도하는 ‘나르시시스트 리더’는 그런 능력을 갖추지 못해 동경만 하는 사람들을 매료시킨다. 리더가 발휘하는 나르시시즘적 광휘를 받아들이며 자신을 무의미한 존재로 느꼈던 사람들의 자아존중감이 강화된다. 스트롱맨이 득세하는 요인 중 하나는 어떤 일을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행동하기보다는 강력한 지도자에게 맡기고 의존하려는 ‘퇴행적 심리’ 때문이다.
극단주의 조직이나 테러집단도 나르시시즘적 취약점을 활용한다. 이들은 자아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10대 청소년이나, 위기에 빠진 사람들, 자존감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접근해 인간적으로 존중하고 인정하며 확신감을 심어 준다. 이런 집단이 주는 확실한 지침, 강력한 권위는 이들에게 불안한 내면과 삶을 잊게 할 든든한 틀이자, 자아존중감을 높이는 근거가 된다.
리더나 조직이 가진 나르시시즘의 부정적 영향력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저자가 권고하는 다양한 ‘처방’은 직장 상사 등 주변의 나르시시스트에 대한 대응책으로도 참고할 만하다. 저자는 이들이 ‘지뢰밭’인 만큼 정면으로 맞서는 것은 위험하다고 조언한다. 상대방이 상황을 제멋대로 왜곡하고 유리하게 이끌어나가는 데 익숙한 만큼 정면으로 맞서면 이기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그들을 가능한 한 사무적으로 대하고, 전문지식과 논리로 무장해 열린 자세로 타협에 나서라고 제안한다.
좀 더 거대한 나르시시스트들에게 맞서려면 사회적 문제에 대해 분노나 좌절, 두려움, 체념, 거부로 일관하기보다 가능한 한 직접 참여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거쳐 보라고 역설한다. 저자는 “나르시시즘적 유혹의 교묘한 프레임에 현혹되지 않으려면, 개인의 나르시시즘을 고착시키는 일을 피하려면, 스스로의 문제에 책임의식을 갖고 주체적으로 대응하되 다양한 사람과 직접 대화하며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민주적 습관을 형성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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