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바바 뉴욕증시에 빼앗기자
"혁신기업 유치 더 밀릴 수 없다"
차등의결권 도입으로 경쟁 나서
샤오미, 9월 홍콩증시 상장
IPO 규모 165억달러 안팎 예상
AIA 이후 최대 상장기업 될 듯
[ 김동윤 기자 ] 중국 정보기술(IT) 기업 샤오미(小米)가 오는 9월 홍콩증시에 상장할 예정이라고 홍콩 언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1일 보도했다.
홍콩증시가 샤오미 상장 유치를 놓고 미국 뉴욕증시와 벌인 경쟁에서 승리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홍콩증시가 상장규정을 개정해 차등의결권제도를 도입한 게 결정적이었다는 분석이다.
◆2010년 이후 홍콩증시 최대 규모 IPO
SCMP에 따르면 샤오미는 최근 크레디트스위스, 도이치뱅크, JP모간, 모건스탠리 등을 공동 주관사로 선정해 홍콩증시 상장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투자은행(IB) 업계에서는 샤오미의 기업가치가 최대 1100억달러(약 12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기업들이 상장할 때 전체 주식의 10~15% 정도를 매각하는 점에 비춰보면 샤오미의 기업공개(IPO) 규모는 165억달러 안팎이 될 것으로 IB업계에서는 예상한다. 홍콩증시 상장기업 중 2010년 AIA그룹(204억달러) 이후 최대 규모 IPO가 될 전망이다.
‘좁쌀’이란 의미의 샤오미는 ‘중국의 스티브 잡스’로 불리는 레이쥔(雷軍) 회장이 2010년 베이징에서 설립했다. 중국 젊은 층 사이에서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높고 디자인도 좋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2014년 삼성전자를 누르고 중국 스마트폰 시장점유율 1위에 등극해 화제가 됐다.
2015년 하반기께부터 샤오미가 해외 증시 상장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레이 회장은 2016년 3월 “5년 안에 상장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부인했다.
이후 인도 스마트폰 시장에서 선전하고, 제품 다각화에 성공한 것을 기반으로 샤오미의 실적이 빠르게 개선됐다. 레이 회장이 홍콩증시와 뉴욕증시 두 곳을 놓고 상장을 심사숙고하고 있다는 보도가 작년 말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뉴욕증시에 알리바바 뺏긴 아픔 ‘설욕’
1990년대 후반 중국 기업들의 해외 증시 상장 바람이 불기 시작한 이후 홍콩증시는 중국 기업들의 1순위 고려 대상이었다. 중국공상은행, 페트로차이나, 시노펙, 텐센트 등 중국 대표기업 대부분이 홍콩증시에 상장돼 있다.
그러나 2014년 9월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기업 알리바바가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하면서 홍콩증권거래소는 충격에 휩싸였다. 상장 이후 알리바바 주가가 고공행진을 지속하면서 “중국의 국부를 미국에 빼앗겼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후 마윈(馬雲) 알리바바 회장이 NYSE를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가 차등의결권제도 때문이었다는 사실이 공개돼 ‘2차 충격’을 가했다. 홍콩에선 이 제도를 서둘러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미국은 사모펀드(PEF)에 의한 적대적 인수합병(M&A)이 만연하던 1980년대 이후 많은 기업의 요구로 1994년 차등의결권제도를 도입했다. 차등의결권은 기업의 최대주주나 경영진에 보유 지분율보다 많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다. 1주당 의결권을 1개가 아니라 더 많이 줘 적대적 M&A를 방어하는 장치로 활용할 수 있다. 덕분에 뉴욕증시는 구글, 페이스북 등 많은 혁신기업의 상장을 유치했다.
홍콩증권거래소는 작년 12월 상장규정을 대폭 완화해 신(新)경제 및 바이오테크 기업에 한해 차등의결권을 허용하기로 했다. 리샤오자 홍콩증권거래소 총재는 “오는 6월 초 관련 준비작업을 마치고 차등의결권을 요구하는 기업들의 상장 신청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SCMP는 “샤오미 유치 성공은 홍콩증시에는 매우 뜻깊은 ‘사건’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샤오미를 신호탄으로 디디추싱, 메이퇀뎬핑, DJI 등 중국을 대표하는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신생 벤처기업)들도 앞으로 홍콩행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 차등의결권
기업의 최대주주나 경영진에 보유 지분율보다 많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 1주당 의결권을 1개가 아니라 더 많이 준다. 적대적 기업 인수합병(M&A) 위험이 닥칠 때 경영권을 보호하는 장치다. 미국 영국 독일 등 선진국에서 주로 시행하고 있다.
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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