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부산행' 열차에서 섬뜩한 좀비로 변했던 소녀가 이번엔 초능력자의 딸로 변신했다. 배우 심은경이 지난달 31일 '염력'으로 스크린에 돌아왔다.
영화 '염력'(감독 연상호)은 어느 날 갑자기 초능력이 생긴 평범한 아빠 석헌(류승룡 분)이 모든 것을 잃을 위기에 처한 딸 루미(심은경 분)를 구하기 위해 염력을 펼치는 이야기를 그렸다. 극 중 당차고 용기 있는 청년 사장 '루미'를 연기한 심은경을 최근 서울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심은경과 연상호 감독의 협업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애니메이션 '서울역' 더빙, '부산행' 특별 출연에 이은 세 번째 만남이다. 사실 '염력' 캐스팅은 연 감독 연출력에 반한 심은경의 바람으로 이뤄졌다.
"연달아 작품을 할 수 있게 돼 배우로도, 팬으로서도 정말 영광이에요. '부산행' 촬영 때 감독님께 다음 작품도 기회가 되면 꼭 하고 싶다고 말했죠. 그랬더니 제가 주연인 영화가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염력' 시나리오를 봤는데 연 감독님스러웠어요. 감독님을 믿고 출연을 결심했어요."
'염력'은 배우가 아이디어를 내면 감독은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완벽한 협업으로 완성된 영화다. 심은경은 이 과정에서 자신에게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다. 다른 영화에선 보지 못했던 그의 표정이다. 연 감독의 섬세하고 명확한 디렉션 덕에 배우 심은경이 한층 더 성장한 것이다.
"장례식장과 파출소에서 싸우는 두 장면이 기억에 남아요. 시나리오는 뼈대만 굵직하게 나왔고 절반은 애드리브였죠. 시나리오에 나와 있는 대사대로 연기하지 않고 저에게 편한 말투로 바꿔서 했어요. 그 과정에서 대사가 추가되기도 하고 애드리브도 자연스럽게 나왔죠. 감독님이 잘 캐치해서 편집해주신 것 같아요."
현장에선 류승룡과 연 감독이 분위기메이커 역할을 했다. 특히 심은경은 두 사람의 배려 덕분에 연기에 집중할 수 있었고, 배운 것도 많고 느낀 것도 많은 시간을 보냈다.
"감독님도 힘든 게 많고 쉽지 않을 텐데 스태프들의 노고를 배려해주셔서 많이 감동 받았어요. 류승룡 선배님은 제가 감정 신 촬영 전 감정을 잡는 동안 기다려주셨어요. 슛이 들어가면 선배님과의 호흡이 아주 잘 나왔는데 선배님의 연륜 덕분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저도 오랫동안 연기를 한다면 나중에 선배님 같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심은경은 악역에 대한 욕심도 조심스레 꺼내 보였다. 그와 함께 '염력'에 출연한 정유미가 해맑은 얼굴로 악행을 저지르는 건설회사 홍상무로 분해 광적인 연기를 펼쳤기 때문이다. 심은경은 정유미로 인해 홍상무 캐릭터의 매력이 극대화됐다고 극찬했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을 때부터 제가 이 역할을 하면 안 되냐고 농담으로 이야기했어요. 배우라면 누구나 탐낼 만한 캐릭터이거든요. 그런데 그 역할은 유미 언니가 연기했기 때문에 이제껏 볼 수 없던 캐릭터가 탄생한 것 같아요. 저도 언니처럼 분량이 많든 적든 영화를 잘 살릴 수 있는 멋진 캐릭터를 연기해보고 싶어요."
아역배우로 연기를 시작한 심은경은 2004년 MBC 드라마 '결혼하고 싶은 여자'로 데뷔해 벌써 16년의 경력을 쌓았다. 영화 '써니', '수상한 그녀', '특별시민', 드라마 '내일도 칸타빌레', '나쁜 남자' 등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많은 작품에 출연했으며 히트작도 여러 편이다. 하지만 그에게도 깊은 슬럼프가 오곤 했다.
"이번에 류승룡 선배님께 따뜻한 조언들을 많이 들었어요. '지금도 잘 하고 있으니까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천천히 쉬엄쉬엄해'라고 하셨죠. 그 말이 제 생각을 많이 바꾸게 된 계기가 됐어요. '염력' 이후로는 여행도 다니고 생각할 시간을 가지면서 욕심, 갈증을 많이 내려놓았죠. 앞으로 비워내고 채워갈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심은경은 '염력'을 통해 힐링 받고 좋은 기운을 얻었다며 관객들 역시 통쾌함을 느끼고 블랙코미디를 즐기길 바란다고 전했다. 심은경은 1월 '염력'에 이어 2월엔 '궁합'으로 종횡무진 활약할 예정이다.
한예진 한경닷컴 기자 geni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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