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투협 떠나는 황영기 회장 "규제 벽 쳐놓으면 산업 체력 허약해진다"

입력 2018-02-02 16:00   수정 2018-02-02 16:27

황영기 금융투자협회장(66·사진)이 지난 3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오는 3일 퇴임한다.

황 회장은 2일 이임사를 통해 금융 당국에 규제 혁신에 대한 결단을 당부했다.

황 회장은 "규제의 벽을 쳐놓으면 자율과 창의가 뛰놀 공간은 좁아지고, 좁은 공간 안에서 지시받으며 자란 산업의 체력은 허약할 수밖에 없다"며 "최근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조선조 정조가 편 개혁정책 신해통공(辛亥通共)을 본따 '무술통공을 하겠다'고 밝힌데 대한 기대가 크다"고 말했다.

이어 "만약 진입규제장벽 철폐로 가장 큰 금융산업인 은행업에서 새로운 경쟁이 일어난다면 이는 한국 금융업 역사상 가장 혁명적인 변화로 이어질 것"이라며 "지지율이 역대 최고로 높은 정부니 만큼 개혁에는 가장 좋은 여건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다음은 이임사 전문.

임직원 여러분! 회장 황영기입니다.

3년 전 2월 4일, 바로 이 자리에서 취임식을 하면서 여러분들을 처음 만났는데 이제 같은 자리에서 떠나는 인사를 하게 됐습니다. 여러분 얼굴을 보고 인사하는 마지막 날이라 생각하니 정말로 아쉬운 마음입니다.

뒤돌아보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지만, 오늘만큼은 좀 뒤돌아 볼까 합니다. 제가 나름 화려한 경력을 거쳐온 사람이지만 2015년에 금융투자회사들의 직접 투표를 거쳐 제3대 금융투자협회장으로 선출되고, 자본시장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달려온 지난 3년은 저에게는 가장 보람있었던 화양연화(花樣年華)의 시간이었습니다.

2015년 협회장으로 취임할 당시 저는 회원사들을 향해 자본시장의 파이를 키우겠다고 약속했었습니다. 오랜 숙원이던 초대형 투자은행(IB) 제도들이 마련되어 대형증권사들이 발행어음도 출시하고 기업신용공여, IMA업무, 신기술사업금융업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코스피, 코스닥시장도 호황이지만 협회가 운영하는 K-OTC 프로같은 장외시장투자도 늘었습니다.

펀드시장 규모는 3년전에 398조원 정도였는데 지금은 540조원(1월30일·NAV기준) 정도 됩니다. 운용사는 취임 당시 86개사에서 전문사모운용사 진입장벽이 낮아지면서 169개가 됐고, 비과세 해외투자펀드, ISA같은 선진형 자산관리상품도 나왔습니다.

은행 산업과 비교하여 증권업의 현실에 대하여 기울어진 운동장 이라는 화두를 던져 증권사 균형발전 30대과제 마련으로 이어진 것에도 큰 보람을 느낍니다.

그간 우리 회원사들을 향해서 "야성과 상상력을 가져달라" 주문해왔는데 우리 협회가 주도해서 야성과 상상력의 산물도 나왔습니다. 26개 증권사와 블록체인 컨소시엄을 구성해 블록체인 인프라를 만들고, 이를 기반으로 세계 첫 공동인증 서비스 Chain ID 라는 혁신도 선보였습니다.

3년 사이 회원사들의 업무 영역은 분명히 종전보다 넓어지고 산업의 위상도 높아졌다고 생각합니다. 이 같은 변화는 결코 저 혼자 만든게 아닙니다. 금융개혁 의지가 높았던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진웅섭 전 금융감독원장과 같은 훌륭한 금융당국과 같은 시기에 일했던 행운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회원사 및 협회 임직원 여러분들이 지난 3년간 저를 믿고 열심히 함께 달려오지 않았더라면 어려웠을 것입니다. 이제 회원사는 물론이고 정부당국이나 국회, 언론 등 바깥에서도 협회가 업계 발전을 위해 열심히 뛴다고 인정하는 분위기라는 것을 체감하실 것입니다.

제가 직원 여러분께 자본시장 최고의 전문가 집단이 되어 달라고 말해왔는데 이제 그 고지에 조금씩 다가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앞서 말씀드린 성과들은, 협회 직원들의 업무 집중도나 업무에 접근하는 수준이 높지 않았으면 해내기 어려웠을 일들이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저 개인으로는 금융 분야에서 일한 지난 20년을 돌아보면 회한이 많이 남습니다. 반도체나 철강 조선 분야에서는 한국에서 세계 최고 기업들이 나왔지요. 그런데 금융에서는 아직 글로벌베스트 기업이 없습니다. 만약 근본적인 변화가 없다면 향후 10년, 20년 동안에도 금융산업에서는 글로벌 베스트 기업이 못나올지도 모릅니다.

그 이유는 금융당국은 물론 금융투자산업 스스로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우선 금융은 신뢰를 기반으로 돈을 융통하는 사업입니다. 투자자 보호, 금융시스템의 안정, 그리고 금융회사의 건전성, 이 세 가지를 확보하기 위한 규제는 당연하고 반드시 필요한 규제입니다. 금융산업 종사자들이 이걸 모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사전에 커다란 규제의 벽을 쳐놓으면 자율과 창의가 뛰놀 공간은 좁아지고, 좁은 공간 안에서 지시받으며 자란 산업의 체력은 허약할 수 밖에 없습니다. 금융투자산업은 은행에서 거절당하는 저신용 경제주체들에게 모험자본을 공급하면서 혁신을 이끌어내고 효율적으로 자원을 배분하는 역할을 합니다.

자율과 창의라는 DNA를 가진 금융투자산업, 그리고 IB는 세상이 변화하게끔 돈의 흐름을 바꾸는 자극제 역할을 할 수 있고 또 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다행히도, 최근 최종구 금융위원장께서 조선조 정조가 편 개혁정책 신해통공(辛亥通共)을 본따 "무술통공을 하겠다"고 밝힌데 대해서 기대가 큽니다. 만약 진입규제장벽 철폐로 가장 큰 금융산업인 은행업에서 새로운 경쟁이 일어난다면, 이는 한국 금융업 역사상 가장 혁명적인 변화로 이어질 겁니다. 지지율이 역대 최고로 높은 정부니 만큼 개혁에는 가장 좋은 여건이라고 생각하고, 이런 혁신을 추진하는 금융위원회의 의지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우리 업계에도 마지막으로 당부드립니다. 우리 금융투자업계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분투하고 있음을 정부도, 대중도, 이제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 해도 고객은 냉정합니다. 혹시나 단기적 이익에 함몰되서 투자자의 기대를 저버리는 경우는 없는지 시시때때로 스스로 돌아봐야 합니다. 지금은 우리 업권내에서만 경쟁하는 시대가 아니라 타 금융권은 물론 IT회사, 유통회사들과도 경쟁해서 살아남아야 하는 시대입니다.

또한 오랜 통제에 순치되서 새로운 사업기회에 대한 대한 호기심과 도전의욕을 잃지는 않았는지도 자문해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은행,보험,증권,자산운용 등 거의 모든 금융업을 직접 경험해 봤지만, 앞으로 가장 큰 성장 기회는 금융투자산업에 있다고 확신합니다. 금융투자산업은 지도에 없던 신대륙을 찾아나서는 것이 업의 본질입니다. 제가 네비게이션을 끄고 나침반을 들고 떠나야한다고 강조하는게 이 때문입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보다 힘센 상대와의 싸움이 있을지라도 우리 금융투자업계 여러분들은 야성과 상상력으로 무장하고 물러서지 말아 달라는 말씀을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습니다.

끝으로 우리 직원 여러분께 당부 드립니다. 올해 첫 날 여러분과 함께 떡만두국을 먹으면서 제가 성공적 사회생활의 비결로 세 가지를 소개했습니다. 기억하실 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하라는 것, 주변사람들을 배려하라는 것, 그리고 책임지라는 것 세 가지 입니다. 나름 43년간 치열하게 살아온 선배의 조언이니만큼 사회생활을 하면서 부딪히는 선택의 순간마다 이 세가지를 행동 지침으로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하나 더 보태자면 더 크고 멀리 생각하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크게 생각하고 멀리 생각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끊임없이 읽고 공부하라는 겁니다.

제가 취임 초기 직원 간담회에서 "내가 지금 하는 이야기의 80%는 최근 2년 이내에 읽고, 듣고, 본 것을 토대로 한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인도 속담에 "위대함은 다른 사람보다 앞서 가는데 있지 않다. 어제의 나보다 한 걸음 앞서가는데 있다"는 말도 있지요. 변화의 파도에 피동적으로 떠밀려 가지 않게 어제의 나에 뒤처지지 않게 끊임없이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새로 오시는 권용원 회장님은 협회장으로는 최초로 엔지니어 출신이고 공무원을 거쳐 벤처 경험도 있고 온라인증권사를 크게 키워내 시야도 넓고 훌륭한 인품까지 겸비한 분입니다. 차기 협회장으로 선출되어서 우리 업계가 탁월한 선택을 했다 싶고 직원 여러분들에게도 잘된 일이라 생각되어 대단히 기쁩니다. 이렇게 훌륭한 분을 모시게 된 만큼 여러분들은, 그 동안 한 것처럼 한국 금융투자산업의 발전을 위해 열심히 일해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지난 3년간 기대수준도 높고 요구도 많은 회장하고 일하느라 여러분들 모두 고생 많았습니다. 저의 소양이 부족해서 혹시 제 말이 화살이 되고 제 혀가 칼이 되어 부지불식중 누군가의 마음에 상처를 입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음에 상처를 받은 분이 있다면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제 이임식이 여러분들께는 제3대 협회장이 임기를 마치고 떠나는 자리로 보이실 것입니다. 저 개인으로는 1975년 1월8일 130여명의 사회초년생 (삼성그룹) 입사동기들과 시작한 43년 1개월간의 긴 사회생활을 끝내고 새로운 생을 여는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우리 직원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고마웠다는 말씀 전합니다. 언제 어디에선가 다시 만나더라도 웃는 얼굴로 인사하면 좋겠습니다. 여러분들의 앞날에 멋진 기회와 영광이 있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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