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의 자사주 취득이 늘면서 ‘누구를 위한 자사주 매입인가’를 놓고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핵심은 두 가지다. 정말로 주주에게 혜택이 돌아가느냐, 그리고 기업과 실물경제에 도움이 되느냐다.
자사주 매입은 대표적인 주주 환원 수단으로 꼽힌다. 상장기업이 자사 주식을 사들이면 시장 내 유통 주식 수가 줄어 주당순이익(EPS)이 증가하고 주가 상승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자사주엔 배당 청구권이 없어 주당 배당액도 늘어난다. 자사주 매입 후 소각까지 이어지면 배당처럼 주주에게 이익을 환원하는 효과가 있다. 대주주 입장에선 현금배당보다 주식 소각 시 지분율을 높일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미국은 1982년 자사주 매입을 합법화했다. 연기금 및 펀드가 새로운 ‘권력’으로 부상하면서다. 일본과 독일도 각각 1994년, 1998년에 이를 허용했다. 한국도 1998년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대한 경영권 방어 차원에서 자사주 매입 규제를 완화했다.
1980년대 ‘기업사냥꾼’으로 불리며 활약한 칼 아이칸은 자사주 매입을 ‘주주의 승리’라고 설파했다. 행동주의 투자자 넬슨 펠츠의 압력에 제너럴일렉트릭(GE)은 지난해 500억달러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결정했다.
최근엔 기업 이사회 임원들이 스톡옵션을 시장에 내다팔 때 주가가 희석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자사주 매입을 활용하는 측면이 크다. 미국 상장사 임원의 30% 이상이 여전히 EPS를 바탕으로 성과보수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자사주 매입은 스톡옵션을 행사하는 최고경영자(CEO)와 주가 부양을 바라는 주주들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는 지점이다.
자사주 매입이 가장 현명한 지출이란 주장이 있지만 잘못된 결과로 판명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미국 금융권은 2006~2008년 2070억달러어치 자사주를 취득했다. 하지만 금융위기로 망가진 은행을 구제하는 데 2009년 미국 납세자 돈 2500억달러가 투입됐다. 1995년부터 1620억달러어치 자사주를 사들인 IBM은 현재 시가총액이 1540억달러에 불과하다.
자사주 매입은 기업의 장기 성장을 위해 써야 할 돈을 깎아먹는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크다. “단기적인 주주 환원이 혁신과 숙련근로자에 대한 투자 및 장기 성장에 꼭 필요한 자본 지출을 줄이고 있다”(래리 핑크 블랙록 CEO)는 설명이다. 시스코시스템즈가 지난 20년간 자사주 매입에 쏟아부은 돈(750억달러)으로 중국 화웨이를 인수했다면 훨씬 나은 선택이었을 것이다.
상황을 더욱 위태롭게 만들고 있는 점은 기업들이 주로 빚(채권 발행)으로 자사주를 매입했다는 사실이다. 채권 이자는 세액공제가 되지만 현금에서 얻은 이자는 과세 대상이기 때문이다. 부채를 늘려 자사주를 사고 배당금 비용을 내는 게 기업엔 세금을 아끼는 길이었다. S&P500 기업의 평균 순부채 규모는 이익의 1.5배 수준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금리 인상 시 미국 기업의 20%가 자금난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자사주 매입을 둘러싼 논란의 이면엔 연기금 및 펀드가 주도하는 ‘주주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자리잡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주주 자본주의를 선도한 미국과 영국에서 더욱 거세다. 영국 민간 싱크탱크인 신경제재단(NEF)은 “주주 자본주의가 기업의 투자 활동을 줄이고 회사 이익을 빼먹고 있다”며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같은 개혁적인 모델 확산을 주장하고 있다.
한국도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가의 의결권 행사지침)’ 도입에 따라 국민연금 등 연기금 및 펀드가 경영 활동에 미치는 영향력이 더욱 커졌다. 자사주 매입 같은 주주 환원이 활발해질 것이란 기대도 높다. 권력화한 주주가 단기적인 안목이나 정권의 정책 목적을 위해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기업에는 물론 실물경제에도 도움이 될 리 없다. 그 피해는 미래 일자리를 찾는 젊은 세대가 짊어져야 할지도 모른다.
wh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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