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태의 데스크 시각] 제약 리베이트 없애려면

입력 2018-02-04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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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태 바이오헬스부장


제약업계가 연초부터 홍역을 치르고 있다. 약사법 개정으로 한국판 ‘선샤인 액트’가 시행되면서다. 경제적 이익 지출보고서 작성 의무화가 그것이다. 견본 의약품, 학회 참가비, 식음료 등 제약사들이 영업이나 마케팅 과정에서 의사 등 의료인에게 제공하는 모든 지원 내역이 대상이다. 영수증이나 계약서 등 증빙서류는 물론 해당 의사 서명까지 남겨야 한다. 정부가 요청하면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한다. 합법적 테두리 안이라도 의사와 제약사의 거래 관계가 낱낱이 밝혀지는 셈이다.

'만남' 기피하는 제약·의료계

미국 유럽 등에서도 시행 중인 선샤인 액트는 의약품과 의료기기의 거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제도다. 하지만 시행 초기 혼란은 간단치 않다. 제약업계와 의료계 모두 바짝 얼어붙었다. ‘의심 살 만한 행동을 하지 말자’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의사를 상대로 한 제약사의 판촉 활동도 사실상 올스톱됐다. 제약사 임직원과의 식사 만남은 물론이고 병원 방문까지 금지하는 의사들이 적지 않다. 만났다는 사실만으로 자칫 리베이트를 받은 것 아니냐는 오해를 받을까 염려돼서다.

오리지널약이 많은 다국적 제약사나 영업망이 탄탄한 국내 대형 제약사들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학술대회 세미나 등을 통해 약효나 신제품을 알릴 수 있는 여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극도로 조심하다 보니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라는 말이 나온다. 중소제약사들은 더 아우성이다. 취약한 영업력과 낮은 인지도 탓에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는데 선샤인 액트 때문에 의사를 만날 기회마저 차단됐다는 볼멘소리가 터져나온다.

일각에서는 합법적인 임상연구마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된다. 임상연구비가 공개되면 연구자인 의사가 구설에 오를 수 있어서다. 이런 분위기라면 바이오벤처뿐 아니라 대형 제약사들조차 신약 개발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국내 제약산업이 환골탈태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적지 않다. 불법 리베이트에 기댄 영업 관행으로는 미래가 없다는 인식에서다. 기술력을 키우기보다는 손쉬운 제네릭(복제약)에 의존하다 보니 리베이트가 필요악이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리베이트는 환자뿐 아니라 국가에도 피해를 준다. 환자는 약효가 떨어지거나 비싼 약을 처방 받을 가능성이 커지고 이는 건강보험 재정 악화로 이어진다.

제약업계도 변신에 적극적이다. 윤리경영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주요 제약사들이 자발적으로 국제표준화기구(ISO)의 반부패경영시스템(ISO 37001) 도입에 나섰다. 한미약품이 지난해 11월 국내 제약업계 최초로 인증을 받았고 녹십자 유한양행 등 16개사는 연내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전문의약품 광고 규제는 여전

제도 개선 목소리도 높다. 전문의약품 광고 규제 완화가 대표적이다. 의사 처방전 없이는 못 사는 전문의약품은 광고 규제가 까다롭다. 일반인 대상 광고나 홍보 활동은 일절 금지다. “새 제품을 내놓아도 의사들에게 제대로 알릴 방법이 없다”는 제약업계 불만이 나오는 배경이다. 의사 처방 여부가 제약사 실적을 좌지우지하는 의료구조도 바꿔 가야 한다. 미국 프랑스 일본처럼 환자에게 약 선택권을 주는 성분명 처방 도입을 검토해볼 만하다. 제약사들이 리베이트 유혹에 다시 빠지지 않도록 하는 보완책 마련이 절실한 때다.

py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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