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스 금리 등 양적완화 정책
아베노믹스 성공 적극 지원
경기확장세 61개월 이어져 '호황'
세계 경제 양적완화 '출구전략'
돈 풀어 부양하던 아베노믹스
기존 정책 지속하기엔 한계 달해
양적완화 종료 땐 주가·환율 '요동'
사상 첫 연임 총재 등장할까
일본 금융사 이코노미스트 대상 조사
3분의 2 이상 "구로다 연임 기대"
일각선 "2% 물가상승 달성 실패"
새 인물 필요하단 목소리
[ 김동욱 기자 ] 136년 일본은행(BOJ) 역사상 처음으로 총재직을 연임하는 인물이 등장할까. 올 4월로 임기가 만료되는 구로다 하루히코(田東彦) BOJ 총재 후임 선정에 일본 경제계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구로다 총재 연임 여부는 단순히 중앙은행장 교체 문제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구로다 총재가 그동안 대규모 양적완화정책을 시행했고, 마이너스 기준금리를 전격 도입하는 등 ‘아베노믹스(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를 떠받치는 역할을 수행했기 때문이다.
시장에선 구로다 총재 연임을 점치는 시각이 많다. 사상 최장기 경기 회복을 눈앞에 두고 있는 시점에 일본 정부가 “믿고 쓸 장수를 포기할 이유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전통’과 ‘명분’을 중시하는 일본에서 74세 고령인 구로다 총재 연임을 밀어붙일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갈림길에서 맞이한 ‘장수 교체’ 시점
지난달 초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NHK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 후임 BOJ 총재 인선과 관련해 모호한 발언을 내놨다. 아베 총리는 “(아베노믹스의 핵심 정책인)‘세 개의 화살’ 가운데 하나인 금융정책과 관련해 구로다 총재가 기대에 부응하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구로다 총재 연임 여부에 대해선 “구로다 총재와 계속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인사에 관해서는 아직 ‘백지 상태’”라고 말했다. ‘계속 함께하고 싶다’는 발언에 방점을 찍으면 연임, ‘백지 상태’라는 표현에 주목하면 새로운 인물의 등용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구로다 총재 연임 여부 및 후임자 인선과 관련해 아베 총리가 명확하게 발언할 수 없는 것은 일본 경제의 특수한 상황 때문이라는 시각이 많다. 2012년 말 아베노믹스 시행 이후 일본 경제는 ‘잃어버린 20년’의 굴레에서 벗어났다는 평을 들을 정도로 회복기조가 뚜렷하다. 아베노믹스가 시행된 5년간 일본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494조엔(2012년)에서 사상 최대인 549조엔(2017년)으로 늘었다. 이 기간 에 취업자 수는 270만 명 늘어난 반면 실업자는 110만 명 줄었다. 지난해 실업률은 2.8%로 23년 만의 최저치로 떨어졌다. 경기 확장세가 61개월 연속 이어지며 사상 두 번째 장기 호황을 경험하고 있다.
이 같은 경제 성과의 상당 부분은 BOJ의 적극적인 통화정책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이 잇따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행한 양적완화정책을 종료하는 움직임을 보이는 상황에서 일본도 조만간 ‘출구 전략’에 들어설 것이란 관측이 많다. 그렇다고 서구의 양적완화 종료에 무턱대고 동참할 수도 없다. 아베 총리는 하루빨리 ‘디플레이션 탈출’ 선언을 하고 싶어 하지만 소비와 물가가 제대로 살아나지 않는 등 아직까지 정책 효과가 ‘미완성’ 단계에 있어서다.
BOJ 첫 총재 연임 가능성 놓고 엇갈려
이런 상황에서 구로다 총재의 연임 가능성을 놓고 시장 전망은 엇갈리고 있다.
연임 가능성을 높게 보는 측은 아베노믹스 성공에 ‘일등공신’ 역할을 한 구로다 총재에 대한 일본 정부와 집권 자민당 지지가 두텁다는 점에 주목한다. 올초 일본 금융회사 이코노미스트를 대상으로 한 블룸버그 조사에서 3분의 2 이상의 전문가가 구로다 총재 연임을 점쳤다. BOJ 총재 임기 만료에 맞춰 부담스러운 정책 과제가 몰려 있는 만큼 뚝심 있게 일을 처리할 카리스마를 지닌 인물로 구로다 총재만한 사람이 없다는 평이다. 도쿄대 법학부 차석졸업, 대학 재학 중 사법시험 합격, 행정고시 차석합격, 영국 옥스퍼드대 경제학 석사 경력에 대장성(현 재무부) 주요 요직과 아시아개발은행 총재를 두루 거친 자신감 및 지난 5년간 아베 총리와 찰떡궁합을 보이며 정책의 손발을 맞춘 것이 큰 자산이다.
새로운 인물의 등장 가능성을 무시해선 안 된다는 시각도 있다. BOJ 역사상 20세기 전반기에 이노우에 준노스케와 아라키 에이키치가 후임자 임기 뒤에 재임한 적은 있지만 연임한 인물은 없다. 74세 고령에 임기 동안 2% 물가 상승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만큼 “새 인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꾸준히 나온다. 여기에 지난 1월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시장 기대와 달리 양적완화정책 지속을 밝힌 것은 “자신의 재임 기간 마지막 성적표를 주가 급락과 거시경제 지표 악화로 끝맺음하기 싫어한 구로다 총재의 보수적 선택”(니혼게이자이신문)이라는 평도 있다. 구로다 총재 단임을 전제로 한 분석이다.
일본 언론과 금융계에 따르면 구로다 총재가 연임하지 못할 경우 후임으로는 나카소 히로시 BOJ 부총재와 아마미야 마사요시 BOJ 이사가 우선 거론된다. 나카소 부총재는 금융위기 당시 빠른 대처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고, 아마미야 이사는 양적·질적 금융완화정책의 구조를 짠 인물로 알려져 있다. 아베 총리에게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제시한 ‘경제교사’로 불리는 이토 다카토시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와 아베 총리의 경제자문역인 혼다 에쓰로 전 시즈오카현립대 교수, 이와타 기쿠오 BOJ 부총재 등도 하마평에 꾸준히 오르고 있다.
일본 금융정책 ‘분기점’에
앞으로 5년간 BOJ를 이끌 수장 인선 결과에 따라 일본 경제 향방이 크게 바뀌는 ‘분기점’에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많다. 아베 총리와 혼연일체로 완화정책을 더 밀어붙일지, 아니면 출구 전략에 돌입해 ‘숨고르기’에 들어설지가 BOJ 총재 인선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양적완화정책 종료 시점 선택뿐 아니라 종료 이후 대처법에도 차이가 날 수 있다. BOJ가 양적완화를 종료하면 주식시장이 급락하고 환율이 요동칠 가능성이 적지 않다. 특히 통화 공급 확대를 통한 엔화 약세를 주도해온 구로다 총재가 연임에 실패할 경우 엔화 강세 현상이 가속화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마이너스 기준금리정책을 포기할 경우 이에 연동된 일본 국채 매입 지속 여부 및 평가손익 조절, 수익률 곡선 관리 등도 수월찮은 과제다. BOJ가 지속적으로 표방해온 2% 물가 상승 목표를 계속 유지할지도 관심사다.
구로다 총재는 지난달 23일 브리핑에서 차기 BOJ 총재에게 필요한 자질을 묻는 질문에 자신이 계속하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글로벌 관점과 실용적인 능력, 이론적 분석을 겸비해야 한다”고 답했다. 비슷한 시기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BOJ 후임 총재는 디플레이션 탈피에 대한 이해가 있는 사람이 적격”이라고 강조했다. 후임자가 어떤 점을 중시하는지에 따라 세계 3위 경제대국의 정책 방향이 크게 바뀔 수밖에 없는 시점이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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