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353일 만에 풀려나
"지난 1년은 나를 돌아본 소중한 시간"
당장 경영활동 재개보다 현안부터 점검할 듯
부친이 유치 힘쏟은 평창올림픽 참석 관심
[ 노경목 기자 ]
생애 처음으로 6.56㎡ 독방에 갇혀 홀로 시간을 보냈다. 면회를 오는 사람들에겐 밝게 웃으려 애썼다. 운동하고 책을 읽는 중에도 가슴 한구석은 늘 묵직했다. 억울하기 짝이 없지만 꾹 눌러 참았다.
5일 석방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353일 동안 겪은 시간이다. 그는 이날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지 못해 죄송하다”며 “지난 1년은 나를 돌아본 소중한 시간으로 앞으로 세심히 살피겠다”고 말했다.
이 부회장은 이제 예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지만 앞으로 그가 어떻게 움직일지는 알기 어려운 여건이다. 당장 경영활동을 예전처럼 재개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대형 인수합병(M&A)을 비롯한 중요 의사결정에 서서히 물꼬가 트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수감 기간 이 부회장은 차분한 시간을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교정당국 관계자는 “이미 알려진 인사가 아니었다면 누구도 삼성 총수라는 사실을 알지 못할 정도로 조용하고 모범적으로 생활했다”고 전했다.
당장 이 부회장이 맞닥뜨릴 문제는 해외출장을 나갈 수 있느냐다. 이 부회장은 지난해 2월 법정 구속으로 경영자로서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유죄가 확정되기 전까지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받는 선진국의 상당수 경영자는 ‘중죄를 저질렀으니 감옥에 간 것 아니냐’는 시선을 받는다.
이 부회장은 삼성전자를 위해서라도 이런 오해를 하루빨리 불식시켜야 할 입장이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이 아직 남은 가운데 일일이 찾아가 설명할 수는 없다. 대신 직접 전화하고 친필편지를 쓸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삼성 측 관계자의 전언이다. 여기에는 그간 상황을 진정성 있게 설명하고 자신과 삼성에 보내준 관심에 감사하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2심을 앞두고 자신에 대한 탄원서를 써준 벤처기업협회와 삼성전자 협력업체 모임인 협성회에도 감사 인사가 건네질 전망이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가장 고대하는 시간은 떨어져 있던 가족들과의 재회였다. 이 부회장은 이날 구치소에서 나온 뒤 곧바로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을 찾아 와병 중인 아버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에게 인사를 드렸다. 이 자리에서 오랫동안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 건강이 좋지 않은 어머니 홍라희 여사의 손을 잡고 그간의 마음고생을 위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저녁 6시30분께 용산구 한남동 자택으로 귀가했다.
이 부회장은 당분간 자택에 머물며 그동안 만나지 못한 회사 경영진과 지인을 만나며 심기를 추스를 것으로 보인다. 사업 현장을 방문한다면 지난해 9월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간 평택 반도체공장이 유력하다. 3차원(3D) 낸드플래시 생산의 전진기지로 직접 투자를 결정하고 2015년 착공식 때 테이프 커팅을 한 곳이다.
다음달 22일 삼성그룹 창립 80주년을 맞아 수감 기간 가다듬은 경영 구상을 밝힐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제3의 창업’을 선언하며 삼성의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내놓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하지만 2심에서 무죄가 아니라 집행유예를 받은 만큼 떠들썩하게 나서기는 힘들 것이라는 전망이 더 많다. 삼성 관계자는 “재판이 완전히 매듭지어지기 전에는 이 부회장이 적극적으로 나서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또 하나의 관심은 평창동계올림픽 참석 여부다.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삼성전자가 올림픽 공식후원사이고 이 회장이 평창 유치를 위해 발벗고 뛰었던 만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는 관측이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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