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특검의 '누더기 기소'에 제동 건 이재용 2심 재판

입력 2018-02-05 17:48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뇌물공여 사건 항소심 재판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353일 만에 풀려났다. 1년 가까운 총수 공백으로 어려움을 겪은 삼성전자가 경영정상화에 시동을 걸게 됐지만, 이 부회장이 특별검찰에 구속기소된 이후 전개된 일련의 사법 상황은 우리 사회에 가볍지 않은 화두(話頭)를 남겼다.

2심 재판부는 “부정한 청탁이나 정경유착은 없었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최대 쟁점이었던 ‘경영권 승계를 위한 묵시적 청탁’ 자체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최고 권력자가 삼성을 겁박해 뇌물공여가 이뤄졌다”고 판시한 대목은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뒤흔들었던 ‘뇌물공여사건’의 실체를 확인시켜준다. 정치권력 앞에서 ‘약자’일 수밖에 없는 기업의 수난이 이 사건의 본질이었다는 얘기다.

박영수 특검 측의 상고 방침에 따라 최종심의 판단이 남게 됐지만, 특검의 짜맞추기식 기소가 법원에서 제동이 걸린 것은 의미가 적지 않다. 특검은 뇌물공여 횡령 등 다섯 가지 혐의를 씌웠고, 공소장도 네 번이나 변경해 무리한 기소를 넘어 ‘누더기 기소’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미르·K스포츠재단에 낸 후원금을 ‘제3자 뇌물’로 기소한 뒤 ‘단순 직접 뇌물’을 추가했고, ‘단순 직접 뇌물’로 기소한 정유라 승마지원에는 ‘제3자 뇌물’까지 병기하기 위한 공소장 변경을 이어갔다. 이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과 한 차례 더 만났다는 이른바 ‘0차 독대’ 정황 증거까지 내놨지만, 청와대 경호실이 부인했고 2심 법원도 인정하지 않았다. 처음 기소 때부터 가정과 추정, 정황 논리가 공소장을 지배했고, “걸리기만 해라”는 식의 무리한 법 적용이 적지 않았다. 부실 수사에 과잉 수사가 겹친 것은 재판부가 “사건의 본질을 잘못 규정했다”는 취지로 특검을 비판한 데서도 드러난다.

“이 사건에 정경유착은 없다”는 재판부 판단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치에 기업이 끌려 들어가고, 정치권력이 기업의 생사까지 좌우하는 한국의 현실을 다시 한번 확인케 한다. 이번 재판을 놓고 일부 좌파 시민단체들은 갖은 방법으로 ‘유죄 여론몰이’를 해왔다. 노골적으로 재판부를 압박한 여당 정치인도 적지 않았다. 모두 역사적 사실로 기록되고, 엄정한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1심 재판 때 ‘묵시적 청탁’이 5년 실형의 근거로 인용되면서 “증거재판주의와 죄형법정주의 원칙이 과연 살아있나”라는 자조와 우려가 나왔던 사실도 짚어둘 필요가 있다. 정치·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한 ‘포퓰리즘 기소’도, 전(前)근대적 ‘원님 재판’ 논란도 더는 없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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