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 가맹점의 '배달' 딜레마

입력 2018-02-06 17:42   수정 2018-02-07 07:59

주문앱·배달대행 수수료 부담… 남는 게 없다
10~20대 모바일 주문 많고 배달원은 대행업체로 빠져나가
'울며 겨자먹기'로 수수료 높은 주문앱·배달대행 업체 사용

정부 압박에 본사는 치킨값 못 올리고…
배달료 1000~2000원 따로 받는 곳도 등장
일부 지역 점주들 독자적으로 치킨값 올려



[ 김보라 기자 ] 치킨 가격 인상을 두고 프랜차이즈 본사가 정부의 눈치를 보는 동안 일부 가맹점들이 독자적으로 치킨 가격을 올리고 있다. 배달비 명목이다. 경남 김해 지역의 A치킨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들은 다같이 메뉴당 1000원씩 올리기로 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 부담이 커진 데다 올 들어 주문 앱(응용프로그램) 수수료와 배달대행 수수료까지 올라 더 이상 가격을 올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는 게 가맹점주들의 설명이다. 가맹점주들은 특히 10%가 넘는 주문앱과 배달대행 수수료 부담이 크다고 주장한다.

3조원으로 커진 주문앱 시장

국내 음식배달 시장 규모는 15조원 정도다. 이 중 치킨이 20%가 넘는 약 3조5000억원을 차지한다. 과거 치킨 배달 과정은 단순했다. 집 근처 점포에 전화를 하면 해당 점포 소속 배달원이 배달했다. 가맹점은 배달원 인건비와 오토바이 유지비, 연간 사고 보험료 정도를 부담했다.


온라인으로 주문한 상품이 오프라인으로 전달되는 O2O(온·오프라인 연계) 서비스가 확산되면서 치킨 주요 소비층인 10~20대는 여러 메뉴를 선택할 수 있는 모바일 주문앱으로 빠르게 갈아탔다. 2015년 1조원을 넘어선 이 시장은 지난해 3조원에 육박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치킨 배달 주문의 30~40%가 주문앱을 통한다. 외식업체는 앞다퉈 배달의민족, 요기요, 배달통 등에 입점했다.

주문앱은 가맹점으로부터 판매 가격의 11~14%를 수수료로 받는다. 여기에 카드 수수료, 부가세, 배달대행 수수료까지 더하면 음식값의 30% 이상이 수수료로 나간다는 게 치킨업계의 주장이다. 업계 관계자는 “주문앱 결제 시 수수료를 받지 않는다는 1위 업체 배달의민족도 앱 상단 노출식 광고비가 지역마다 월 40만~50만원에서 수백만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배달대행업체 수수료 16.7% 인상

주문앱 시장이 커지자 배달대행업체도 생겼다. 배민라이더스, 바로고, 식신 히어로 등이다. 주문앱에 주문이 몰리는 시간에 대기하고 있다가 해당 지역 가맹점이 ‘콜’을 띄우면 달려가는 일종의 퀵서비스 개념이다.

올해 최저임금 인상은 배달대행 시장을 더 키웠다. 배달원을 직고용하는 업주는 배달원의 시급에 오토바이 운영에 따른 세금과 유류비, 보험료 등을 포함해 시간당 1만5000원의 비용을 지출한다. 그럼에도 한 시간에 최대 가능한 배달 횟수는 3~4회. 반면 건당 수수료 방식으로 정산하는 배달대행업체 배달 수수료는 건당 3500원 내외로, 주문이 들어오지 않으면 별도의 임금을 주지 않아도 되고 배달 주문이 몰리는 시간에도 직고용과 비슷한 수준의 임금만 주면 된다.

하지만 배달대행 수수료는 점점 오르는 추세다. 올 들어 16.7% 인상됐다. 서울지역에서 통상적으로 적용된 배달거리 1.5㎞당 대행료는 3000원이었지만 대다수 업체들이 1.5㎞당 3500원으로 올렸다. A가맹점주는 “치킨 한 마리를 주문앱을 통해 주문하면 가맹점은 수수료 명목으로 약 4500원을 내야 하는 셈”이라며 “임차료, 전기요금 등 이것저것 다 빼고 치킨 한 마리를 팔아 남는 순수익은 200원도 안 된다”고 말했다. 배달원들이 배달대행업체로 빠져나가며 구인난도 심해졌다. 월급 300만원 이상에 1년 근속 퇴직금까지 줘도 사람 구하기가 어렵다.

시급 9000원 넘어도 배달원 못 구해

치킨 프랜차이즈 점주들은 주문앱·배달대행서비스의 수수료를 낮출 수 없으면 치킨 가격을 올려달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본사는 정부와 소비자 여론을 살피고 있다. 프랜차이즈 메뉴 가격은 본사가 정하는 권장소비자가에 따라 정해지지만 강제성은 없다. 다만 더 싼 점포로 주문이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해 가급적 같은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한 치킨집 점주는 “떡볶이, 김밥 가격도 1년 만에 2~4배 오른 곳이 많은데 왜 치킨만 서민물가의 기준이 돼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어쩔 수 없이 배달료 1000원을 받기로 했다”고 말했다.

배달대행 수수료 문제는 치킨업계만의 문제는 아니다. 대표적인 배달 음식인 피자, 중식 등도 배달원을 없애고 배달대행으로 갈아타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치킨 시장은 수십 년간 무료 배달 서비스를 기반으로 성장했기 때문에 배달비 부과에 대한 소비자 반발이 다른 메뉴보다 훨씬 크다”며 “3500원짜리 떡볶이를 주문하면서 배달비 3000원을 내는 건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1만8000원짜리 치킨에 배달비 1000원을 내는 건 저항이 거세다”고 말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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