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성난 센강

입력 2018-02-06 17:52  

센강은 프랑스 중동부 부르고뉴에서 발원해 북서쪽 영국해협으로 흘러간다. 길이는 776km. 그 중간 지점에서 파리 시내를 남북으로 가른다. 오래전부터 강물의 흐름이 완만하고 수량 변동이 심하지 않아 가장 안정적인 뱃길로 사랑받았다.

파리 한복판을 지날 때는 노트르담 대성당이 있는 시테섬을 부드럽게 보듬어 안는다. 서울의 여의도처럼 강 가운데에 있는 이 섬은 파리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기원전 켈트족의 한 분파인 파리시족이 이 섬에 요새를 짓고 살았다. 로마군이 점령한 뒤 ‘루테시아 파리시오룸’으로 불렀고, 프랑크 왕국이 수도로 삼으면서 지금의 파리가 됐다.

시테섬에서 에펠탑 쪽으로 가다보면 19세기에 세워진 알마다리가 나온다. 영국 다이애나 왕세자빈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장소로 잘 알려진 곳이다. 바토무슈라는 유람선의 승선장도 이곳에 있다. 나폴레옹 3세가 크림전쟁 승리 기념으로 건립한 이 다리는 센강의 수위를 측정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교각에는 참전용사 주아브(Zouave)의 동상이 있다. 동상의 발목에 물이 차면 강변도로가 폐쇄되고 허벅지까지 오르면 배 운항이 금지된다.

센강이 범람하는 일은 흔치 않지만 1658년과 1910년, 2016년에는 큰 물난리가 났다. 1910년 1월 말 강의 수위가 8.62m까지 차올랐다. 시민들은 집을 버리고 파리 바깥지역으로 피했다. 도시가 복구되는 데까지 35일이 걸렸다. 불어난 강물 위에 떠다닌 와인 오크통과 온갖 부유물, 쓰레기로 도시 전체가 홍역을 치렀다.

2016년 6월에도 수위가 6.1m까지 차올라 주요 도로와 건물이 물에 잠겼다. 법원 앞 교통표지판의 꼭대기가 아슬아슬하게 드러난 사진이 외신을 장식하기도 했다. 파리 부촌인 16구 주택과 광장, 차고들도 모두 침수됐다. 에펠탑과 앵발리드 등을 오가는 지하철 운행이 중단됐고,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 미술관은 전시품을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 문을 닫았다.

올해도 비상사태가 벌어졌다. 지난달 말부터 수위가 6m에 육박하면서 주민 1000여 명이 대피하고 1500여 가구에 전기가 끊기는 일이 벌어졌다. 센강의 명물인 유람선도 1주일 이상 발이 묶였다. 강변에 있는 식당들은 다 문을 닫았다. 노트르담 성당 등 주요 관광지로 통하는 지하철 역이 폐쇄됐고 루브르 박물관은 지하층 출입을 금지했다.

센강 범람의 원인은 집중호우로 인한 홍수다. 한꺼번에 폭우가 쏟아지면 파리처럼 제방 관리와 상하수도 정비가 잘 된 도시도 속수무책이다. 센강의 옛 이름은 세쿠아나(Sequana)다. 켈트어로 ‘부드럽게 흐르는 강’이라는 뜻이다. 평소에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센강이지만 대규모 자연 재해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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