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임기자 칼럼] 중년 남성을 위한 욕망의 도(道)

입력 2018-02-07 18:27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미국에서 불어온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열풍이 확산일로다.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시작된 성폭력 고발 바람은 검찰을 비롯한 법조계, 국회와 지방의회, 재계, 영화계, 문학계, 경찰, 학교 등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미국에서도 그랬다. 할리우드의 거물 제작자인 하비 와인스타인을 시작으로 NBC 간판 앵커, 연방 상원의원 후보들을 잇따라 추락시켰다. 체조선수들을 치료한다며 수십 년 동안 성폭력을 일삼아온 주치의의 추악한 모습도 만천하에 드러났다.

미투의 가해자는 중년 남성

미투 가해자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성희롱, 성추행, 성폭행 등의 가해자는 대부분 남성이다. 그중에서도 중년 남성, 특히 상당한 지위와 명예, 권력을 가진 중년 이후 남성이다. 검찰 간부, 로펌 대표, 부하 여군 장교를 성폭행한 해군 대령, 동료 여경을 성폭행한 경찰 간부, 교사를 상습 성추행한 교장, 어린 제자들을 추행한 대학교수와 교사, 동료 의원을 희롱하고 추행했다는 국회의원, 동료 여성의원이 옆으로 지나갈 때마다 엉덩이와 가슴을 만졌다는 지방의회 의원…. 원로 시인과 새로 선출된 시인협회장까지 성추행 가해자로 거론되고 있다. 직장 내 성폭력의 가해자도 대부분 40~50대다.

정의를 구현해야 할 검찰이, 나라와 국민을 지켜야 할 군인과 경찰이, 제자를 사랑으로 보듬어야 할 선생이, 자기 분야의 지도자로 행세하는 이들이 인면수심의 악행을 왜 저지르는가. 그 위선적인 모습에 분노하고, 혀를 차게 된다. 분노와 함께 또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안타까움이다. 평생 쌓은 업적과 명성, 신뢰가 한순간에 무너질 일을 왜 저지를까. 사회에 만연한 성폭력이 오랜 남성중심 사회의 구조적 문제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희롱, 추행을 포함한 성폭력은 이름 그대로 폭력이다. 강한 자가 약한 자에게 권력을 무기로 저지르는 범죄다. 성공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간 이들이 왜 이런 폭력적 범죄로 허망하게 추락할까.

옛날 불심이 깊은 부인이 집 뒤편에 작은 암자를 지어 젊은 선객(禪客)이 수행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음식이며 옷이며 약이며 지극정성으로 수발한 지 20년. 노파가 된 부인이 젊은 딸에게 “오늘은 공양(식사)을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스님을 안아보라”고 시켰다. 선객의 품을 파고든 딸이 꼭 껴안은 채 물었다. “스님, 이럴 땐 기분이 어떻습니까?” 선객이 무심하게 답했다. “마른 나무가 찬 바위에 기대니(枯木依寒巖) 한겨울에 따뜻한 기운이 없구나(三冬無暖氣).” 한마디로 아무 느낌이 없다는 얘기였다. 딸한테 자초지종을 들은 노부인은 격노했다. “내가 사람을 잘못 보고 도적놈을 키웠구나.” 노파는 그길로 암자로 달려가 선객을 내쫓고 불을 질러버렸다. 선가에서 유명한 ‘파자소암(婆子燒庵·노파가 암자를 불태우다)’이라는 화두다.

욕망 길들이기

수행자가 도를 닦는 것은 감각과 감정을 끊어내기 위해서가 아니다. 감각과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중년이나 노년이라고 해서 감정과 욕구가 없는 게 아니다. 한 원로 사제에게 젊은 신자들이 물었다. “신부님은 평생 독신으로 지내면서 성적인 욕망을 어떻게 끊었습니까?” 사제가 답했다. “욕망을 끊다니요? 저는 지금도 맛있는 음식을 보면 먹고 싶고, 젊고 예쁜 여성들을 보면 가슴이 두근거리는데요.”

욕망에는 죄가 없다. 문제는 욕망을 다루는 태도다. 세상이 달라졌다. 야한 농담을 자랑삼아 떠들던 시대는 지났다. 중년 남성들은 스스로 경계하며 돌아볼 일이다. 욕망의 노예가 돼 끌려다니고 있지는 않은지, 그 욕망이 통제되지 않은 채 말로 행동으로 뛰쳐나가지 않는지.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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