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의 블루오션 시프트] 비고객에 미래 있다

입력 2018-02-08 18:22  

권영설 논설위원


흔히 실패도 자산이라고 한다. 벤처라면 몰라도 대기업에선 통하지 않는 얘기다. 회사에 큰 타격을 주기 때문이다. 절대 실패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블루오션 전략 창시자인 김위찬, 르네 마보안 교수가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새 책 《블루오션 시프트》에서 이들은 “시장을 창출한다면서 커다란 위험을 수반하는 시행착오를 마구잡이로 해서는 안 된다”며 “반복될 수 있는 확실한 과정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고 말한다.

프로세스와 도구, 방법론을 체계화한 《블루오션 시프트》의 핵심 방법론이 비(非)고객 탐색이다. 거대한 시장을 찾는 첫걸음이다. 비고객은 당연히 우리 업종 너머에 있다.

업종의 벽 넘어야 신시장 창출

세 가지 층위가 있다. 1단계 비고객은 우리 제품을 썼다가 안 썼다가 하는 사람이다. 2단계는 우리 제품을 거부하는 그룹이다. 가장 규모가 큰 3단계 비고객은 우리 업종에서는 한 번도 개척하지 않은 집단이다. 비고객들은 우리 업종이나 우리 회사가 그들이 원하는 ‘무엇인가’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간다. 그들의 움직임에 우리가 새 시장을 열기 위해 찾는 새로운 ‘가치’가 있는 것이다.

스티치픽스라는 미국 회사는 2011년 창립한 의류 쇼핑몰로 작년 매출이 9억7000만달러나 된다. 작년 11월 나스닥에 상장했고 기업 가치는 28억달러에 달한다. 창업자인 카트리나 레이크는 비고객, 즉 의류 쇼핑몰을 이용하지 않는 사람들의 움직임에 주목했다. 수많은 사람이 쇼핑몰에 너무나 비슷한 상품이 많아 고르다 포기한다. 누군가 내가 좋아하는 옷을 골라주면 어떨까. 창업자 자신이 검은 원피스 하나를 고르려고 밤새 쇼핑몰을 뒤진 경험에서 발견한 가치다.

고객들이 설문지에 신체 치수와 원하는 색상, 디자인 등을 표시해 보내면 스티치픽스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해 고객이 원하는 옷이나 스카프, 모자 등을 1차로 선별한다. 두 번째 단계에서는 스타일리스트들이 참여해 다섯 가지 패션 상품을 꾸며 예쁜 박스에 넣어 보내준다. 고르는 수고를 덜어주고, 또 스타일리스트의 터치까지 있는 패션 상품! 비고객의 움직임에서 새로운 시장을 찾아낸 블루오션 사례다.

다른 곳서 헤매는 집단 살펴야

29초영화제는 영화 제작 시장의 비고객에게 주목한 케이스다. 전국 영상 관련 학과가 200여 개나 되지만 졸업작품을 찍는 데만도 수백만원이 들어 영화감독을 꿈꿀 수 있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했다. 스마트폰으로도 영화감독이 될 수 있는 공모전이 탄생하자 얘기가 달라졌다. 중·고생, 아마추어, 은퇴자까지 지난 7년간 2만6000명이 넘는 ‘감독’이 탄생했다. 이들이 낸 작품이 3만8000개를 넘고, 사이트를 방문한 사람이 2500만 명에 달한다. 올해 국제영화제까지 개최한다.

패션그룹형지가 1996년 선보인 여성복 브랜드 크로커다일은 그동안 패션의 아웃사이더였던 30~50대 여성의 가치를 찾아낸 사례다. 브랜드 옷은 비싸 못 사입던 사람들에게 ‘가성비’로 승부한 것이다. ‘어덜트 캐주얼’이란 새로운 블루오션이 탄생했다. 외환위기 속에서도 연 30% 이상 성장했고 여성복 단일 브랜드로는 처음으로 매출 3000억원을 돌파했다. 최병오 회장은 “수년간 돈 버느라 정신이 없었다”고 회고한다.

블루오션은 저 멀리 어딘가에 떨어져 있는 시장이 아니다. 바로 우리 옆에 있다. 그 시장으로 시프트(이동)하기 위한 실마리는 우리 업종이나 회사의 고객이 아닌 사람들을 탐색하는 데서 풀릴 수 있다. 비고객의 움직임에 성장의 비밀이 숨어 있다는 얘기다.

yskw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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