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미국 증시는 카지노 같아"… 레버리지 상품 규제 목소리 커졌다

입력 2018-02-08 19:47  

미국 금융가, 증시 붕괴 가능성 경고

1조달러 규모로 급성장한 변동성 기반의 파생상품
'공포지수' 치솟자 잇단 투매

정부 예산 증액으로 재정적자 우려
국채금리 급등하며 3대지수 하락



[ 김현석 기자 ] 미국 증시의 새 ‘뇌관’으로 지목되는 레버리지 상장지수상품(ETP) 등을 엄격히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5일 ‘플래시 크래시(flash crash)’를 촉발한 알고리즘 기반의 파생상품이 증시 붕괴까지 부를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플래시 크래시는 짧은 시간에 매도 물량이 대량으로 쏟아져 지수가 급락하는 것을 말한다.

◆‘공포지수’ 기반 ETF 급증

지난 몇 년간 세계 증시가 별다른 조정 없이 상승하자 변동성에 기반을 둔 상장지수펀드(ETF), 상장지수증권(ETN)이 인기를 끌었다. ‘공포지수’로 불리는 시카고옵션거래소(CBOE)의 변동성지수(VIX)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쇼트 VIX 인버스 ETN’ 등은 지난해 VIX가 사상 최저 수준인 11까지 떨어지자 상당한 수익을 냈다.

하지만 5일 폭락장에서 VIX가 37까지 치솟자 하루 만에 모든 돈을 날린 ETN과 ETF가 나왔다. 두세 배 레버리지까지 활용했다가 투자금을 거의 잃은 것으로 분석됐다. VIX 하락률의 두세 배 수익률을 올리는 구조로 짜여 있지만 VIX가 급등하는 바람에 낭패를 봤다. 노무라증권과 크레디트스위스증권의 ‘쇼트 VIX 인버스 ETN’이 청산된 이유다.


이날 국채금리 상승 우려로 다우지수가 하락 출발했으나 오후 3시 무렵 VIX 관련 물량이 대거 쏟아져 장중 6% 이상 급락했다고 JP모간은 분석했다. 당시 15분간 다우지수 하락폭은 700포인트에서 1600포인트로 커졌다. 변동성을 노린 파생상품이 대량 매물로 나와 증시 변동성을 증폭하는 악순환을 야기했다.

억만장자인 레온 쿠퍼맨 오메가자문 회장은 7일(현지시간) CNBC방송에서 “미친 파생상품들이 세계 최고의 자본시장을 파괴하고 있어 규제 당국이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변동성 관련 제품의 레버리지를 낮추고 증거금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에선 최대 세 배 레버리지 상품이 팔리고 있다.

세계 최대 사모펀드 블랙록은 “투자자들이 해당 상품과 관련한 리스크를 명확히 알 수 있게 레버리지 및 인버스 상품을 보통의 ETF와 구별하도록 하는 규제를 지지한다”고 5일 발표했다. 증시 폭락으로 투자자들이 ETF마저 위험한 상품으로 간주할까 우려해서다.

ETN은 ETF와 달리 기초자산을 보유하지 않고 운용사가 신용으로 대체한다. 시장이 폭락하면 증권사도 큰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행동주의 투자자 칼 아이칸 아이칸엔터프라이즈 회장은 6일 “ETF나 ETN이 급증해 시장이 카지노와 같다”고 경고했다.

◆1조달러 넘는 변동성 상품

이번에 청산된 노무라와 크레디트스위스의 인버스 ETN은 규모가 30억달러 선에 불과했다. 구조는 조금 다르지만 변동성을 기반으로 설계된 상품 규모는 1조달러를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바이너 바살리 미국 롱테일알파LLC 설립자는 “VIX ETF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며 “수많은 다른 변동성 전략이 있다”고 말했다.

주식, 채권, 상품 등 각 자산의 변동성을 비슷하게 유지하는 알고리즘을 가진 리스크패리티펀드(약 6000억달러), 알고리즘을 활용해 시장 추세를 따라가는 퀀트 헤지펀드인 CTA펀드(약 3000억달러 이상) 등이 대표적이다. 리스크패리티펀드는 증시 변동성이 커지면 주식을 줄이고, 채권시장 변동성이 작아지면 채권을 매수하는 식으로 운용한다.

◆국채금리 상승, 증시 여진

미국 증시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 2일 국채금리 급등이 증시를 끌어내렸다면 5일엔 반대로 증시 폭락이 금리 하락을 유발했다. 7일엔 다시 국채금리가 2일 수준으로 상승하며 증시 불안 요인으로 작용했다.

트레이드웹에 따르면 7일 오후 3시 뉴욕 채권시장에서 10년 만기 국채금리는 전날 마감 금리(연 2.766%)보다 높은 연 2.843%에서 거래됐다.

국채금리는 공화당과 민주당이 향후 2년 동안의 예산 증액 규모에 합의하면서 상승했다. 지출이 늘어나 재정적자 규모가 더 커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기 때문이다. 합의된 예산안은 800억달러 국방비를 포함해 약 3000억달러가량 증액됐다.

국채금리가 다시 오르자 반등세를 타던 다우지수가 0.08%, S&P500지수 0.5%, 나스닥지수는 0.9% 하락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제롬 파월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주식 투자자를 위해 금리 인상 기조 방향을 트는 등의 통화정책을 펴지는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윌리엄 더들리 뉴욕연방은행 총재도 “증시가 곤두박질쳐 낮은 수준에 머물면 경제 전망에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조정 장세가 통화정책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라는 얘기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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