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포트] 이탈리아 집권 노리는 오성운동… 유럽 '극우 포퓰리즘' 힘 키우나

입력 2018-02-11 20:07  

내달 4일 총선…창당 9년 만에 집권 여부 촉각

극우 색(色) 빼기 승부수
베를루스코니·렌치 전 총리와
치열한 3파전에 부동층 40%
중도파 잡으려 반EU 공약 철회
각종 여론조사서 지지율 1위

시험대 선 유럽 극우 정당
작년 독일 극우당 의회진출 계기로
한동안 주춤하던 정치세력 득세
당장 4월 헝가리·9월 스웨덴 총선
오성운동 승리땐 영향 미칠 듯



[ 김동윤 기자 ] 다음달 4일 치러질 이탈리아 총선(상·하원 동시선거)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총선에서 제1야당인 오성(五星)운동이 집권에 성공한다면 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유럽 지역에서 극우 포퓰리즘(대중 인기영합주의) 정권이 탄생할 가능성이 높아서다.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경우 최근 몇 년 새 유럽 지역에서 힘을 키우고 있는 극우 포퓰리즘 정치세력이 더욱 활개를 칠 공산이 크다. 유럽 지역에서 극우 포퓰리즘 정당 지지율은 2000년에는 8.5%였지만 지난해엔 24.1%로 높아졌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유럽의 기존 정당들이 더 이상 극우 포퓰리즘 정당을 무시하기 힘들어졌다”며 “극우 포퓰리즘 정당의 지지율 상승이라는 ‘양적 변화’가 유럽 정치의 ‘질적 변화’를 촉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오성운동 집권에 기대 거는 유럽 극우정당들

2016년 6월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결정 이후 유럽 지역에선 반(反)이민·반EU를 기치로 내건 극우 포퓰리즘 정당이 득세하기 시작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2011년 유럽 재정위기로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경제가 침체 상태에 빠진 이후 이민자들과 EU 체제에 대한 각국 국민들의 불만이 높아진 영향이 컸다. 그해 말 치러진 미국 대선에서 ‘우파 포퓰리스트’로 분류되는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승리하자 유럽 극우 포퓰리즘 정당들은 “이제는 유럽이 깨어날 때”라고 환호했다.

하지만 지난해 5월 프랑스 대선에서 극우정당 국민전선의 마린 르펜 후보가 정치 신인 에마뉘엘 마크롱 현 대통령에게 패배한 것을 계기로 유럽 극우정당들은 소강국면에 접어들었다. ‘EU 탈퇴’를 주장하는 극우정당들에 불안감을 느끼는 유럽 국민이 점차 늘어났기 때문이다.

극우정당들이 기대를 건 것은 작년 9월 치러진 독일 총선과 다음달 4일로 예정된 이탈리아 총선이었다. 독일 총선에서는 극우정당 독일대안당(AfD)이 창당 이후 처음으로 의회 진출에 성공함으로써 유럽 극우정당들은 기사회생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들이 이제 주목하는 것은 20일 앞으로 다가온 이탈리아 총선이다. 이탈리아는 그동안 유럽 주요국 중에서 극우 포퓰리즘 정당의 집권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으로 꼽혀왔다. 극우 포퓰리즘 정당 오성운동이 각종 여론조사에서 줄곧 단일 정당으로는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이탈리아 총선은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이끄는 포르자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한 중도우파연합 △마테오 렌치 전 총리가 주도하는 민주당을 필두로 한 중도좌파연합 △루이지 디 마이오 대표가 이끄는 오성운동 등이 3파전을 펼치고 있다. 선거의 핵심 쟁점은 반(反)이민이다.

최근 18세 소녀를 토막 살해한 범인으로 나이지리아 난민이 지목되면서 반이민 여론이 들끓고 있다. 이 덕분에 여론조사에서 오성운동이 27~29%로 단일 정당 중 지지율이 가장 높다. 포르자이탈리아 지지율은 오성운동에 훨씬 못 미치는 16~18%에 그친다. 하지만 ‘북부동맹’ ‘이탈리아형제들’을 합친 중도우파연합 지지율은 36%에 달한다. 중도좌파연합 지지율은 26~28% 수준이다.

중도파 표심 위해 ‘EU 탈퇴’ 공약 접어

이탈리아의 시사 풍자 코미디언 베페 그릴로가 2009년 기성 정치의 전복을 기치로 내걸고 창당한 오성운동은 2016년 6월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수도 로마 시장을 배출하는 이변을 연출하면서부터 집권당을 꿈꿨다. 오성운동의 현재 지지율은 중도우파연합에 뒤지고 있지만 여전히 집권 가능성은 열려 있다는 게 이탈리아 정치 전문가들 분석이다. 이탈리아 전체 유권자의 30~40%가 부동층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오성운동은 지난달 22일 이들 부동층의 표심을 사로잡기 위한 총선 공약을 공개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그동안 오성운동이 줄기차게 주장해온 ‘유로존 탈퇴 국민투표’가 공약에서 빠진 점이다. 이민자 유입에는 반대하지만 그렇다고 유로존 탈퇴는 바라지 않는 중도우파 성향의 유권자들이 많다는 점을 고려한 전략적 결정이라는 분석이다. 오성운동은 이 밖에 △취약계층을 위한 월 780유로(약 100만원) 기본소득 도입 △400개의 불필요한 법안 폐지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중을 3%로 제한한 유럽재정협약 재협상 △연금 수급 연령을 올린 2012년 연금 개혁안 완화 등을 핵심 공약으로 제시했다.

유로존 전체 부채에서 이탈리아 부채가 차지하는 비중이 20%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전형적인 포퓰리즘 공약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탈리아 정치 전문가들은 안정적인 정국 운영을 위해서는 이번 총선에서 특정 정당(또는 선거연합)이 전체 의석의 40%를 장악해야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오성운동은 현재까지는 다른 정치 세력과의 연대 가능성을 배제하고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다른 우파 정당들과 연대할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이다. 오성운동이 이번 총선에서 승리하면 오는 4월 헝가리 총선, 9월 스웨덴 총선 등에서도 극우정당이 약진할 가능성이 높다.

‘킹메이커’로 부상한 베를루스코니

이번 총선의 또 다른 변수는 베를루스코니의 향방이다. 총 세 차례, 9년간 총리로 재임한 그는 2011년 미성년자와의 ‘섹스파티’, 탈세 의혹 등으로 총리직에서 물러났고, 2013년에는 상원의원직도 박탈됐다. 그는 탈세 혐의가 유죄로 인정되면서 2019년까지 피선거권까지 박탈당한 상태다. 그는 그러나 중도우파 정당 포르자이탈리아 대표로 정치에 복귀했다. 포르자이탈리아는 지역 정당들과 연합해 지난해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주요 지역의 시장과 주지사를 배출하면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그는 ‘정치 원로’ 이미지를 앞세워 극우 포퓰리즘 정당인 오성운동의 집권 가능성에 불안감을 느낀 중도 성향 유권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베를루스코니가 총선 이후 현재 집권당인 중도좌파 민주당과 ‘불안정한 좌우 동거 정부’를 구성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이 경우 집권 세력 내부의 의견 차이로 인해 주요 개혁안의 입법 작업이 지연돼 유럽 4위 규모인 이탈리아 경제는 EU 경제의 핵심 불안 요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가디언은 전망했다.

김동윤 기자 oasis9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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