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태 기자 ] 유전자를 바꿔치기하는 유전자 가위의 오남용과 부작용을 막는 복원 기술이 올해 뜰 유망 바이오 기술에 선정됐다. 줄기세포로 인공 배아를 만드는 기술과 음식물 표본에서 세균과 중금속 같은 화학물질을 한꺼번에 측정하는 센서 기술도 올해 주목받을 바이오 기술에 뽑혔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국가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는 기초·기반 플랫폼, 보건의료, 농축산물·식품, 환경·해양 바이오 분야에서 기술력과 산업 혁신 측면에서 주목받을 ‘10대 바이오 미래 유망 기술’을 발표했다.
바이오 기술의 발전을 이끌 플랫폼 역할을 하는 코어(핵심) 바이오 기술로는 유전자 편집의 오남용에 따른 환경 재앙을 막는 유전자 복원 기술이 꼽혔다. 영국 진화생물학자인 오스틴 버트 임페리얼칼리지 교수는 2003년 특정 유전자를 후세대에 빠르게 퍼지도록 해 전체 개체의 유전자를 바꾸는 ‘유전자 드라이브(gene drive)’를 처음으로 제시했다. 과학자들은 모기가 매개하는 말라리아나 지카바이러스 감염증 같은 질병을 퇴치하는 유력한 수단이지만 되돌리기 어려운 생태계 훼손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경고한다. 최근 들어 원하는 유전자만 골라 바꾸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발전하면서 쥐 개 고양이 원숭이 등 거의 모든 동물과 버섯 사과 토마토 등 식물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가 크게 늘고 있다.
일부 과학자는 유전자 가위의 발달이 생태계에 치명적인 교란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케빈 에스벨트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 연구팀은 2013년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변종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는 수학모델을 공개했다. 미국 중앙정보국도 2016년 유전자 가위를 적용한 유전자 드라이브를 대량살상무기 위험군에 포함했다.
과학자들은 이를 해결할 방법으로 유전자 복원 기술에서 희망을 찾고 있다. 유전자 복원이란 원치 않은 유전자 변이를 없애 생태계가 수용할 만한 ‘유전적 기준선’ 상태로 되돌리는 기술이다. 유전자 편집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발생한 변이를 막고 생물 종 다양성을 지킬 확실한 수단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핵심 바이오 기술에 단일 뉴런(신경세포) 분석 기술도 포함됐다. 신호 전달에 사용되는 뉴런 하나가 생겨나는 과정과 다른 뉴런과의 결합 방식, 커넥툼(뉴런의 연결망)을 시간에 따라 알아내 뇌와 인체의 신경계 지도를 완성하는 데 꼭 필요한 기술이다. 생명연은 10년 내 뉴런 지도가 나오고 개별 뉴런 하나하나에 대한 데이터베이스가 완성될 것으로 예상했다.
사람의 배아(수정란)를 대체할 인공 배아를 만드는 합성 기술도 올해 주목할 기술에 선정됐다.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진은 지난해 3월 쥐의 줄기세포를 이용해 세계 최초로 인공 배아를 만들었다. 배아줄기세포와 배외영양줄기세포, 3차원(3D) 골격을 사용해 살아있는 생쥐의 배아와 거의 같은 구조물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배아의 초기 발생 과정을 실험실에서 모사할 수 있어 신약의 효능과 독성을 확인하는 데 유용할 것으로 평가된다.
보건·의료에 해당하는 레드 바이오 분야에선 생체 내 유전체 편집과 오가노이드 기반 생체모사, 차세대 항암 백신이 뽑혔다. 생체 내 유전체 편집은 유전자 가위로 직접 병든 세포의 고장 난 유전자를 잘라내는 치료법이다. 전문가들은 2023년까지 희귀 질환인 헌터증후군을 비롯해 3~4개 질환에 이 치료법이 적용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법적 문제가 해결된다면 이르면 10년 안에 희귀 질환을 치료한 유전자 교정 아기도 탄생할 수 있다는 게 연구자들의 분석이다. 이 밖에 줄기세포와 3D 프린팅 기술을 이용해 사람이나 동물과 똑같은 미니 장기를 만들어 신약 개발 등에 활용하는 오가노이드와 바이러스에서 유발된 암을 치료하는 차세대 항암 치료제도 올해 눈에 띄게 도약할 것으로 분석됐다. 또 농축산 식품 분야인 그린 바이오에서 식품에 소량 포함된 인공색소, 중금속, 환경호르몬 등을 동시에 검출하는 식품 유해성분 동시검출 센서, 과일의 무게나 크기·생산성에 관여하는 유전자 여러 개를 동시에 골라 편집하는 양적 형질 조절기술이 주목할 기술에 선정됐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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