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 시장서 '무자본 M&A' 또 기승

입력 2018-02-12 20:40  

자본금 수천만원대 기업이 시총 수백억대 상장사 인수

외부자금 끌어들이는 과정서 시세조종 등 '불법' 우려



[ 하헌형/김익환 기자 ] 자본금이 수천만원에 불과한 기업이 외부 자금을 끌어와 시가총액 수백억원대의 코스닥 상장사를 인수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이 같은 ‘무자본 인수합병(M&A)’은 그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하지만 차입금 상환 과정에서 피인수 회사의 공금 횡령이나 주가 시세조종 등 불법 행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어 투자에 주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코스닥 상장사인 보안 소프트웨어 업체 닉스테크는 최대주주인 이 회사 박동훈 대표가 보유 주식 588만여 주(특수 관계자 보유분 포함)를 서울생명공학에 190억원에 매각하기로 했다고 12일 공시했다. 다음달 23일 잔금 납입이 마무리되면 서울생명공학은 닉스테크의 최대주주(지분율 15.22%)가 된다. 지난달 2일 설립된 서울생명공학의 자본금은 5000만원이다. 공시에 기재한 회사의 사업 내용은 ‘경영 컨설팅’이다.


이날 닉스테크 주가는 전 거래일보다 430원(14.03%) 급등하며 사상 최고가인 3495원에 마감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서울생명공학이라는 사명 때문에 닉스테크가 바이오 사업에 진출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개인투자자 사이에서 퍼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앞서 지난 7일 애니메이션 제작사 레드로버는 최대주주인 중국 쑤닝유니버셜미디어가 보유 주식 700만 주를 엘랑비탈에 매각할 예정이라고 공시했다. 레드로버는 2014년 미국에서 흥행 성공을 거둔 국산 애니메이션 ‘넛잡’ 등을 제작한 회사로, 이날 종가(3355원) 기준 시가총액은 1492억원이다. 이달 말 레드로버의 새 최대주주가 되는 엘랑비탈은 지난해 세워진 자본금 1000만원 규모의 회사다. 한 M&A 전문가는 “중국 최대 유통 기업인 쑤닝그룹이 갑작스레 레드로버를 매각하기로 한 이유도 의문스럽지만 엘랑비탈이 인수 자금을 마련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라고 했다. 레드로버 주가는 이달 8일 이후 12.97% 하락했다. 레드로버 관계자는 “엘랑비탈에 대한 정보를 쑤닝그룹 측에 문의했지만 아직 답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올 들어 인트로메딕, 다믈멀티미디어, 이젠텍 등도 자본금 1억원 이하 기업에 경영권이 매각됐다.

서울남부지방검찰청은 올초 차입매수(LBO) 형태로 코스닥 상장사를 인수한 뒤 피인수 기업에 부실채권을 떠넘긴 혐의 등으로 제주도에 있는 카지노 마제스타의 전 대표 등을 구속기소했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무자본 M&A가 이뤄진 뒤 사채시장 등에서 빌린 돈을 갚는 과정에서 주가 시세조종 등의 불법 행위가 이뤄지면 그 피해는 개인투자자가 고스란히 입을 수밖에 없다”며 “‘신사업 진출’ 등의 호재만 믿고 무작정 투자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하헌형/김익환 기자 hh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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