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제주 감귤의 역사

입력 2018-02-12 21:07  

대항해 시절 탐험가들은 괴혈병 때문에 고생했다. 오랜 기간 절인 음식만 먹은 선원들이 무수히 죽어갔다. 그러나 제임스 쿡 선장의 배에서는 3년간 11만㎞의 항해 도중 환자가 한 명도 발생하지 않았다. 비타민C가 많은 오렌지와 레몬 등 감귤류를 풍부하게 제공한 덕분이다.

감귤이 지구상에 등장한 것은 약 800만 년 전이라고 한다. 최근 미국과 스페인 일본 연구진이 세계 감귤류 60종의 게놈을 분석한 결과 히말라야 남동쪽인 인도 북동부와 미얀마 북부, 중국 남동부가 원산지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시대에 감귤을 궁궐에 진상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제대로 재배하기 시작한 것은 1965년부터다. 1964년 연두순시차 제주를 찾은 박정희 대통령이 ‘수익성 높은 감귤을 재배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이듬해 ‘감귤 증산 5개년 계획’에 따라 감귤과수원 조성자금이 지원되면서 본격적인 생산이 이뤄졌다.

한때는 감귤나무 두 그루만 있으면 자식을 대학까지 보낼 수 있다고 해서 ‘대학나무’라고 불렀다. 그 무렵 감귤 10㎏ 가격은 2500원 안팎, 대학 등록금은 1만5000~3만원이었다. 한 그루 생산량이 60~70㎏이었으니 두 그루면 충분했다.

지금의 제주 감귤 품종은 일본에서 들여온 ‘온주귤’이다. 원산지가 중국 저장(浙江)성 원저우(溫州)라는 의미다. 감귤은 서양으로 건너가 ‘만다린(mandarin)’이란 이름을 갖게 됐다. 학자들은 비슷한 명칭인 탠저린(tangerin)을 포함해 감귤, 오렌지, 자몽 등 즙이 풍부한 과일을 ‘시트러스(citrus)’라고 통칭한다.

일본을 거쳐 제주도에 들어온 감귤을 이제는 일본과 중국으로 역수출하기도 한다. 그만큼 맛과 향이 좋아졌다. 한라봉 황금봉 천혜향 레드향 등 새로운 품종도 낳았다. 꼭지가 한라산을 닮은 한라봉은 일본의 청견과 폰칸을 교배한 것이다. 한라봉에 감귤을 더한 레드향, 오렌지에 귤을 더한 천혜향, 천혜향에 한라봉을 더한 황금향도 인기다.

감귤에는 비타민C뿐만 아니라 구연산, 칼슘, 칼륨 등 몸에 좋은 영양분이 많이 들어 있다. 페릴릴 알코올 성분은 전립선암 예방에 좋다고 한다. 감기약 재료로도 쓰인다. 껍질을 말린 진피는 한약재로 각광받고 있다.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기술응용센터가 진피 추출물에 항암 보조 기능이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최근에는 감귤 껍질을 건강식품과 화장품 등에 활용하고 있다. 마침 제주도가 학계와 손잡고 감귤 껍질의 기능성 성분을 추출해 산업화하기로 했다. 현대적인 생산·유통 시스템과 엄격한 품질관리 인증제로 부가가치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잔류 농약 걱정이 없어진다니 기대가 크다. 감귤 재배 50여 년 만의 성과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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