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경제 바람타고 '우후죽순'… 지원금만 타먹는 협동조합 속출

입력 2018-02-13 20:22   수정 2018-02-14 07:52

'좀비 협동조합' 난립 실태

일부선 가짜 조합원 모으고
고수익 미끼로 100억 챙기기도
정부는 조합 지원책만 쏟아내
전문가 "좀비 조합 막는 게 먼저"



[ 임도원 기자 ] “협동조합은 향후 5년간 최대 1만 개 설립이 예상됩니다. 새로운 법인격으로서 경기 안정화에 기여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할 것입니다.”


정부는 2012년 협동조합 제도 도입을 골자로 한 협동조합기본법을 제정하면서 이 같은 청사진을 내놨다. 정부 예측대로 협동조합 수는 1만 개를 넘어섰지만 그 절반가량을 ‘좀비 조합’이 채우면서 기대했던 효과 대신 부작용이 더 부각되고 있다. 정부는 이런 상황에서 협동조합을 앞세운 ‘사회적 경제’ 활성화를 통해 일자리 해법을 찾겠다는 방침이어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업모델도 없이 조합 설립

기획재정부가 13일 발표한 ‘협동조합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폐업했거나 사업을 중단한 협동조합 4447개 중 25.5%가 ‘사업모델 미비’를 폐업 이유로 꼽았다. 애초에 무슨 사업을 할지 제대로 계획도 세우지 않은 채 일단 설립부터 했다는 얘기다. 서울에서 봉제의류 사업을 하고 있는 협동조합 관계자는 “협동조합은 5인 이상만 모이면 창립총회를 한 뒤 지방자치단체 신고를 거쳐 어렵지 않게 설립할 수 있다”며 “별다른 시장 정보 없이 정부 지원을 타내기 위해 협동조합을 설립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발간한 ‘2017 협동조합 정책활용 길라잡이’에 의하면 협동조합 설립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자금지원 사업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소상공인협동조합 공동사업 지원’ 등 21개에 달한다. 소상공인협동조합 공동사업 지원은 5인 이상 소상공인으로 구성된 협동조합 400개에 각각 최대 1억원을 지원한다. 연간 총 5750원을 지원하는 중소기업진흥공단의 ‘신시장진출지원자금’ 등 중소기업 지원사업도 협동조합에 수혜가 간다. 기재부 관계자는 “협동조합 자생력을 높이기 위해 직접 지원보다는 간접 지원으로 전환할 것”이라고 말했다.

◆불법에 연루되기도

협동조합이 불법에 연루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협동조합이 우후죽순으로 생기고 있지만 관리·감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가짜 조합원으로 협동조합을 꾸려 치과와 한의원 등을 운영해온 4개 의료생활협동조합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같은 해 5월에는 “조합원으로 가입하면 산양삼 농장을 통해 고수익을 내주겠다”며 투자자에게서 100억원이 넘는 돈을 챙긴 협동조합 관계자들이 경찰에 붙잡혔다.

조합 내 분쟁으로 경영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도 나오고 있다. 국내 첫 택시협동조합으로 2016년 설립된 한국택시협동조합(쿱택시)은 100여 명의 조합원으로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가 “경영진이 조합 설립 이후 협동조합기본법과 조합 정관을 수차례 위반하며 독단적 경영을 일삼았다”며 10여 건의 민형사 소송을 하고 있다.

◆‘좀비 조합’ 난립부터 막아야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협동조합 지원책만 내놓고 있다.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는 지난해 10월 ‘사회적 경제 활성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협동조합과 같은 사회적 경제 조직에 5년간 최대 5000억원까지 보증하겠다고 밝혔다. 또 국가계약 입찰 시 사회적 경제 조직을 우대하고 의무적으로 일정 물량을 사회적 경제 조직에서 조달받기로 했다. 금융위원회 등 정부 부처가 지난 8일 합동으로 발표한 ‘사회적 금융 활성화 방안’에는 3000억원 규모의 민간 기금을 조성해 사회적 경제 조직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았다.

전문가들은 지원책 마련에 앞서 ‘좀비 협동조합’ 난립을 막는 방안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정 기간 컨설팅을 받도록 한 뒤 조합 설립을 허용하는 예비신고제와 같은 제도가 해결책으로 제시됐다. 김기태 협동조합연구소장은 “규모가 크고 복잡한 조합은 설립 전 최소 6개월간 전문가그룹의 지도를 받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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