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환율 갈등에 금융변동성 커져
우려되는 금융위기 적극 대처해야"
권혁세 < 법무법인 율촌 고문, 전 금융감독원장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자국 우선주의와 보호무역 강화를 골자로 하는 국정연설을 했다. 국정연설에 대한 CNN의 자체 여론조사 결과 미국인 70%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반면, 세계 각국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트럼프의 국정연설 이전에 이미 동시다발적인 통상공세가 시작됐다. 한국산 세탁기와 태양광 패널에 대해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가 발동됐고 철강제품과 기계 부품에 고율의 보복관세가 매겨졌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과정에서 반도체, 자동차 등 한국의 주력산업으로 통상압력이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정부의 통상공세는 대미(對美) 무역흑자를 많이 내온 독일 등 유럽연합(EU)과 중국으로 전선을 확대할 것으로 보인다.
무역전쟁과 함께 세계 경제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에 입각한 경제정책이다. 세계 각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주요 20개국(G20)을 중심으로 공조체제를 강화해 왔다. 이 덕택에 세계 경제는 금융시장의 안정을 꾀하는 가운데 디플레이션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특히 벤 버냉키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의 양적완화 유산을 물려받은 재닛 옐런 전 Fed 의장의 재임기간(4년) 중 점진적 금리인상 정책은 ‘자산거품’의 붕괴나 신흥국 금융위기 없이 성장을 이룰 수 있는 요인이 됐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연두교서에서 보여준 보호무역 강화와 다보스 포럼에서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이 언급한 약(弱)달러 정책 시사는 세계 경제가 각자도생의 시대로 접어들 수 있다는 우려를 갖게 한다. 이미 미국은 트럼프 정부 출범 후 기후변화협약 탈퇴로 인류의 미래를 위한 공존을 외면했다. 경제 대국 중 경기회복이 가장 양호한 국가로 평가되는 미국이 대대적인 감세정책과 1조5000억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 확대, 그리고 약달러 정책을 추진할 경우 인플레이션 유발과 금리상승을 초래해 세계 금융시장의 안정을 저해할 가능성이 있다. 이미 시장에서는 장기국채금리가 상승하고 세계증시가 일시적인 조정을 보였다.
트럼프 정부의 경기부양책으로 물가상승률이 목표치를 빨리 상회할 경우 제롬 파월 신임 Fed 의장의 금리인상 속도가 빨라질 가능성이 있다. 그럴 경우 회복세를 보이는 세계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정무역을 위해서라고 주장하지만 달러를 기축통화로 삼아 세계화의 수혜를 가장 많이 누려온 미국이 보호무역을 추진하는 것은 세계인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
세계 경제가 모처럼 맞이한 회복국면을 ‘골디락스 경제’(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인플레 없는 고성장 경제)로 지속시키려면 자유무역과 글로벌 공조를 통한 공존번영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저금리와 경기회복에 힘입어 다우지수, 나스닥지수는 물론 코스피지수, 코스닥지수 모두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 3배가량 올랐다. 부동산 가격도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주택지수가 16분기 연속 전년 동기 대비 상승세를 보이고 있는 등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웃돌고 있다.
지난 몇 년간 세계 증시활황으로 일반투자자들 사이에는 ‘유포리아(과도한 안도감)’ 심리가 만연해 있다. 하지만 경제예측 분야의 권위자인 해리 덴트나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실러 예일대 교수 같은 전문가들은 자산버블 붕괴를 경고하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나 2000년 초 정보기술(IT) 거품 붕괴는 급격한 금리 인상이 초래한 측면이 크다.
앞으로 강대국 간 통상환율 전쟁이 본격화하면 세계 경제와 금융시장의 변동성 증대는 불가피하다. 위기 대응능력이 취약한 신흥국과 한국처럼 수출에 의존하는 나라는 금융위기를 겪거나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올해는 여느 해보다 위기관리와 통상문제에 세심한 주의와 대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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