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위에 피는 꽃, ‘상화’. 빙속여제 이상화(29)를 많은 이들은 이렇게 부르기 좋아했다. 한 번도 따기 힘든 올림픽 금메달을 두 번 연속으로 거머쥔 그는 얼음 위에서 늘 꽃처럼 미소지었다. 평창은 그의 환한 미소를 볼 마지막 무대였다. 한국 나이 서른, 4년 뒤 베이징 올림픽을기대하기엔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이상화는 지난 1월 전국동계체전을 마치고 “평창에 모든 걸 걸겠다”고 말했다.
이상화가 다시 꽃을 피워올렸다. 최선과 열정의 이름으로 얻어낸 값진 은메달이다. 이상화는 “최선을 다했다. 격려해 달라. 그리고 고맙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상화는 18일 강원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여자 500m에서 37초33의 기록으로 16명의 출전자 가운데 2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첫 100m를 10초20으로 주파하며 대기록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다. 100m 랩타임은 자동차의 ‘제로백’처럼 단거리 빙속의 성패를 결정짓는 핵심 지표. 숙적 고다이라 나오(일본)를 시작부터 앞섰던 것이다. 이상화 역시 자신이 만들어낸 엄청난 속도를 몸으로 체감했다. 이상화는 경기가 끝난 뒤 “스스로도 빨랐다는 걸 느꼈다.그 속도를 주체하기 어려웠다”고 털어놨다.
마지막 곡선 주로에서 이 속도를 이겨내지 못하고 한 차례 삐끗한 게 화근이었다. 결승선을 앞둔 직선코스에서 그는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남은 힘을 짜냈다. 2014년 소치에서 세운 자신의 올림픽 신기록(37초28)에 불과 0.05초 뒤진 성적으로 결승선을 끊었다. 하지만 앞서 달린 고다이라의 36초95를 넘어서진 못했다. 고다이라는 이상화가 들고 있던 올림픽 신기록을 0.33초 앞당기며 일본 여자 빙속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아름다운 질주였다. 이상화는 역주를 끝낸 뒤 태극기를 흔들며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좀체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던 여제의 오열이었다. 라이벌이자 오랜 친구인 고다이라가 다가와 그를 토닥여줬다. 관중들은 아름다운 질주를 끝낸 두 여제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관중들은 “울지마! 이상화”를 울면서 외쳤다.
이상화의 은메달은 특별하다. 이상화는 이번 은메달로 올림픽 3회 연속(2010년,2014,2018) 단일 종목 메달을 따냈다. 아시아 선수로는 처음,세계적으로는 세 번째 사례다. 독일의 카린 엔케가 1980년 대회 금메달, 1984년 대회 은메달, 1988년 대회 동메달로 가장 먼저 3개 대회 연속 메달의 신화를 썼다. 보니 블레어(미국)는 올림픽 500m 3연패(1988년·1992년·1994년) 로 3연속 메달기록을 모두 금빛으로 장식했다.
이상화는 “결과와 상관없이 나의 길을 가겠다. 0.01%의 후회도 남기지 않겠다”던 약속을 지켰다. 그리고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뚜벅뚜벅 걸어냈다. 할 수 있는 일을 다했다. 500m에 집중하기 위해 1000m종목 출전도 포기했다. 컨디션을 끌어 올리기 위해 부상 속에서도 극한의 훈련을 마다하지 않았다. 고다이라에 한참 뒤쳐져 있던 기록도 지난해부터 점차 올라오던 터였다. 자신감을 잃지 않으려 스스로에게 주문도 걸었다. 이상화는 경기 직전 “세계기록과 올림픽 기록 주인공은 아직 나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올림픽이라 마음이 편하다.즐기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선을 다했고 남기지 않았다. 그리고 전설이 됐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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