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러시아 사람들의 기이함… 그 속에서 찾은 인간다움

입력 2018-02-22 19:16  

가난한 사람들


[ 송태형 기자 ] ‘안톤 체호프가 자기 집 정원에 앉아 모자로 햇볕을 잡아 모자와 함께 머리 위에 써 보려고 부질없는 헛수고를 하는 것을 보았다. 하릴없는 실패가 햇볕 사냥꾼의 짜증을 돋우어 그의 얼굴은 갈수록 약이 올라갔다. 그는 그 짓을 그만두며 낙담한 듯 모자로 무릎을 내리치고는, 격한 동작으로 모자를 머리 위에 팩 눌러 썼다.’(146쪽)

‘레프 톨스토이는 도마뱀을 향해 나지막이 물었다. “행복하냐. 응?”(…)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주위를 둘러보고 세계 최고의 위대한 이 인물은 도마뱀에게 고백했다. “난, 불행하단다.”’(147쪽)

막심 고리키(1868~1936·사진)의 산문집 《가난한 사람들》에 실린 ‘사람들이 혼자 있을 때’란 제목의 글에 나오는 대목이다. 고리키는 어느날 트로이츠키 다리 위에 홀로 서 있는 한 소녀의 이상한 행동을 보고는 ‘몇 조각 기이한 기억’을 떠올린다. 작가는 이렇게 썼다. “사람이 혼자 있을 때 하는 짓을 지켜보노라면 그들이 제정신을 잃는 것을 보게 된다.”

이 책은 스탈린 체제와 불화를 겪고 유럽을 떠돌던 1920년대 초 고리키가 썼던 글들을 모아 1924년 펴낸 《일기로부터의 단상. 회고》의 한국어판이다. 러시아어 원전이 번역, 출간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책에 실린 산문 22편의 주인공들은 고리키가 50대까지 직접 만나고 관찰하고 사귄 사람들이다. 톨스토이, 체호프 등 대문호부터 백만장자, 공장주, 때밀이, 여자 마법사, 묘지 파수꾼, 정원사, 시계공, 사형 집행인 등 실로 다양한 ‘러시아 인민’이 등장한다. 이들 중 평범한 사람은 없다. 기이할 정도로 독특하거나 모순에 가득 차거나 자기만의 살아가는 방식과 철학을 가진 사람들이다.

고리키는 작가 특유의 예리한 관찰력과 뛰어난 문학적 묘사로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인간 본성을 성찰한다.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깊은 경외심을 담아낸 ‘고리키 문학’의 원천과 힘을 발견할 수 있는 글들이다. ‘안톤 체호프’편은 고리키가 체호프를 얼마나 존경하고, 깊이 이해했는지를 감동적으로 드러낸다. 체호프 팬이라면 꼭 읽어볼 만한 명문이다.

한국어판 제목인 ‘가난한 사람들’은 부적절하다. 이 책은 고리키가 에필로그에서 밝힌 대로 그가 직접 보고 들은 사람들의 이야기 중 러시아 인민에게 ‘가르침’을 줄 만한 진실을 담은 글모음이다. 책에 등장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가난’에 초점이 맞춰져 있지 않다. 언뜻 책표지만 보면 도스토예프스키 동명 소설의 새 번역본으로 오인할 소지도 있다.(오관기 옮김, 민음사, 360쪽, 1만6000원)

송태형 기자 toughl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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