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1억도 '인공태양' 글로벌 경쟁… 한국도 뜨겁게 달린다

입력 2018-02-26 17:13  

'꿈의 에너지' 핵융합발전

태양보다 더 뜨거운 불덩어리
1억도 플라즈마 있어야 가능

국제핵융합실험로 건설

美·러·EU·日·中·인도·한국
프랑스에 건설, 2025년 가동

한국형 인공태양 'KSTAR'

다양한 가열장치 추가
내년 '1분간 1억도' 달성 계획



[ 박근태 기자 ]
태양처럼 스스로 빛을 내는 별에서는 핵융합 반응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가벼운 원자인 수소가 융합해 헬륨 원자핵으로 바뀌면서 잃어버리는 질량만큼 엄청난 빛과 열에너지가 발생한다. 태양 내부 1400만 도에 이르는 초고온이 핵융합을 일으키는 플라즈마 상태를 만든다. 하지만 지구에서 태양과 같은 핵융합을 구현하는 건 쉽지 않다.

과학자들은 바닷물에서 나는 중수소로 핵융합 발전을 하려면 훨씬 높은 1억 도의 플라즈마가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꿈의 에너지’로 불리는 핵융합 기술 확보에 나선 세계 각국은 태양계에서 가장 뜨거운 불덩어리를 생성하는 도전에 나서고 있다. 한국 역시 그 어느 나라도 성공하지 못한 가장 뜨거운 플라즈마를 가장 오래 타오르게 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국가핵융합연구소는 내년까지 한국형 초전도핵융합연구장치(KSTAR)에 약 1분간 1억 도의 플라즈마를 발생시킬 수 있는 가열장치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태양보다 뜨거운 불덩어리

한국 미국 러시아 유럽연합(EU) 일본 중국 인도 등 7개국은 2007년부터 프랑스 카다라슈에 핵융합 발전의 실현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한 국제핵융합실험로(ITER)를 짓고 있다. KSTAR는 2025년 가동을 시작하는 ITER의 20분의 1 축소판이다. 세계 핵융합실험로 가운데 ITER 운영요건을 가장 충족하는 장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구에서 더 높은 초고온 플라즈마가 필요한 건 지구가 태양보다 가볍기 때문이다. 태양은 지구 질량의 33만2590배에 이른다. 그 덕분에 강한 중력으로 초고온 플라즈마를 촘촘히 가둔다. 하지만 태양보다 질량이 작은 지구는 상대적으로 중력이 약하다. 질량이 작을수록 물체를 끌어들이는 중력도 작아진다. 중력이 작아지면 플라즈마를 높은 밀도로 가둬 핵융합 반응을 일어나게 하기가 어렵다. 핵융합은 플라즈마 밀도와 온도를 곱한 값이 일정 수치를 넘어설 때 일어나는데 지구에선 밀도가 작아진 만큼 온도를 높인 것이다. 지구에서 핵융합 발전을 실현하려면 1억 도는 반드시 도달해야 할 최소한의 목표다.

과학자들은 지구 내핵의 2000배가 넘는 높은 온도에 이르기 위해 일찍부터 다양한 아이디어를 냈다. 1968년 옛 소련(러시아) 핵물리학자 안드레이 사하로프 박사는 세계 최초로 ‘T-3’라는 토카막 장치를 개발해 1000만 도를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한국과 ITER, 중국 등이 채택한 토카막은 외부에 전자석이 붙어 있는 도넛 형태 용기 안에 플라스마를 가두는 장치다. 토카막은 시간에 따라 변하는 자기장을 걸면 플라스마 입자가 에너지를 얻어 회전하고 부딪히면서 온도를 얻는다. 하지만 3000만 도 이상으로 높이는 데 한계가 있다. 1억 도에는 턱없이 모자라는 수준이다.

일본 핵융합과학연구소 등 일부 기관은 1억 도를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지속 시간이 겨우 1~2초에 불과해 300초 목표치에 한참 못 미친다.

KSTAR에는 이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여러 가열장치가 붙어 있다. 대표적인 방식이 ‘공명 가열’이다. 자연의 모든 물체는 고유한 진동수가 있어 매초 진동한다. 물체에 충격을 줬을 때 물체 고유진동수와 같으면 진동은 더 심해지고 진폭이 커지는 공명 현상이 나타난다. 전자레인지가 물 분자에 공명 현상을 일으켜 음식물을 데우는 것처럼 토카막 속 플라즈마에 공명을 일으켜 온도를 높이는 원리다.

이온공명 가열장치(ICRH)는 첫 플라즈마 발생 실험부터 활약해온 가장 오랜 ‘고참급’ 가열장치다. 출력이 0.5㎿로 높지 않아 KSTAR 내부를 초고진공 상태로 만들고 불순물을 없애는 데 사용된다. 전자공명 가열장치(ECH)는 핵융합 실험장치에서 불안정성을 제거해 초고온 상태의 플라즈마가 꺼지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 플라즈마가 높은 온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도록 가둬둔다. 이온공명을 일으키는 주파수는 FM 라디오와 비슷한 수십 메가헤르츠(㎒), 전자공명 주파수는 휴대폰 주파수보다 높은 수십~수백 기가헤르츠(㎓) 대역을 쓴다. 하지만 출력만큼은 휴대폰 전자기파의 수백만 배에 이르는 ㎿에 달한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초고온 플라즈마를 구현하는 실질적 힘이 ‘중성입자빔 주입’ 가열장치에서 나온다고 보고 있다. 공명 가열장치가 전자기파를 통해 간접적으로 에너지를 전달하는 것과 달리 이 장치는 외부에서 가속한 입자를 직접 넣어 에너지를 높인다. 중성 입자가 자기장을 통과해 플라즈마 입자와 충돌하며 막대한 에너지를 생성한다.

내년 1억 도 첫 도달

KSTAR는 2010년 처음 2㎿의 중성입자빔 가열장치를 장착해 플라즈마 온도를 수천만 도로 끌어올렸다. 지난해 말에는 7000만 도까지 도달했다. KSTAR는 9.5㎿ 가열 장치 출력을 확보하고 있다. 지난해 100초간 4000만 도의 플라즈마를 발생시킨 중국의 ‘핵융합 유도 토카막 실험장치(EAST)’의 출력이 34㎿인 점과 비교하면 3분의 1의 에너지로 더 뜨거운 플라즈마를 만든 것이다. 핵융합연은 지난해 말 KSTAR에 중성입자빔 가열장치를 추가로 설치하는 공사에 들어갔다. 기존 장치가 플라즈마 중심부에 온도를 높인다면 새 장치는 플라즈마 위와 아래쪽 두 곳에 중성입자빔을 주입한다. 중심에서 가장자리까지 골고루 가열하기 때문에 안정적인 플라스마를 얻을 수 있다.

오영국 핵융합연 선임단장은 “올해 말 두 번째 중성입자빔 가열장치 시범 운영에 들어가고 빔 3개가 모두 완성되면 내년에는 처음으로 1억 도의 플라즈마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KSTAR나 ITER 모두 궁극적인 목표는 1억 도 이상의 플라즈마를 300초간 내는 것이다. KSTAR는 2025년까지 중성입자빔 가열장치와 전자공명 가열장치를 추가해 28㎿ 가열 출력을 얻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오 선임단장은 “계획이 순조롭게 이뤄지면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적은 출력으로 가장 높은 온도의 고성능 플라즈마를 가장 긴 시간 유지하는 기술을 확보하게 된다”고 말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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