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항암제로부터 살아남는 암 줄기세포의 생존 원리를 밝혀내고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항암제 조합을 찾아냈다. 이번 연구로 난치성 암 환자를 위한 치료제 개발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기대된다.
연세대 신촌세브란스병원은 정재호 연세대 의대 외과학교실 교수(사진)팀이 이같은 결과를 도출했다고 27일 발표했다. 연구결과는 미국 암연구학회에서 발행하는 학술지 ‘클리니컬 캔서 리서치’ 온라인판에 최근 실렸다.
우리 몸의 조직은 줄기세포를 갖고 있어 성장과 재생을 반복한다. 암세포 내에도 1~2% 정도 줄기세포의 성격을 지닌 암 줄기세포가 존재하는데, 자기 재생 능력과 함께 다른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능력도 지녀 암 재발과 다른 장기로의 전이의 원인이 된다. 특정 환자군에서는 이러한 암 줄기세포가 활성화되면서 강한 항암제 저항성을 나타내는데, 이는 기존 항암요법으로는 치료할 수 없는 난치성 암으로 분류된다.
연구팀에 따르면 암 줄기세포가 갖는 항암제 저항성의 핵심 원인은 세포 내 칼슘이온의 수송과 저장에 관여하는 단백질 'SERCA'에 있었다. 일반 암세포는 항암제를 투여하면 과도한 스트레스가 유발되면서 죽음에 이른다. 스트레스 발생에 따라 소포체에서 과다 분비된 칼슘이온이 미토콘드리아에 쌓이면서 세포 자살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암 줄기세포는 항암제를 투여했을 때 과도한 칼슘이온 분비를 줄이고, 동시에 과도하게 분비된 칼슘이온을 다시 소포체로 되돌려 넣을 수 있는 SERCA의 수를 늘려 칼슘이온 농도를 조절해 생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이 같은 생존 원리에 착안해 SERCA의 기능저해제인 ‘탑시가르긴’을 기존 항암효과가 확인된 약물 2DG, 메포민과 함께 투여하는 방법으로 암 줄기세포에 대한 항암효과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동물 실험 결과 평균 200㎥였던 암 줄기세포 종양들은 2DG와 메포민만 투여했을 때는 20일 뒤 525.67㎥, 30일 뒤 1082.44㎥, 40일 뒤 2963㎥로 커졌지만 탑시가르긴을 함께 투여하자 20일 후 372.67㎥, 30일 후489.67㎥, 40일 후 520.11㎥로 성장이 억제됐다.
이번 연구 결과는 암 줄기세포뿐만 아니라 항암제 저항성을 지니는 다른 난치성 암에도 적용 가능하다. 항암 치료로 과도한 스트레스가 발생하거나 종양미세환경이 나빠졌을 때 세포질 내 칼슘이온 농도를 조절해 사멸을 피한다는 원리는 같기 때문이다.
이번 연구로 암 치료 전반은 물론 그간 효과적인 치료법을 찾지 못했던 암 줄기세포를 표적으로 하는 항암치료제 개발에 큰 가능성이 열릴 것으로 보인다. 이번 연구 결과는 특허 등록 후 항암제 개발을 위한 기술 이전도 이뤄진 상태다.
정 교수는 "이번 연구로 암이 진화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적 스트레스와 항암제와 같은 인위적 스트레스에 적응하는 원리에 대한 심층적 이해가 가능해졌고, 악성 암 줄기세포를 치료할 수 있는 실험적 근거를 제시할 수 있게 됐다"면서 "향후 생존과 관련된 메커니즘을 더욱 상세히 규명해 암 줄기세포를 표적으로 하는 항암치료의 새로운 장을 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실시하고 있는 기초연구사업의 지원을 받았다.
임락근 기자 rkl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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