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형규 칼럼] '정년 65세 연장' 담합 시나리오

입력 2018-03-01 18:26  

"정년·연금 공백 없애자는 게 명분
정치·586 담합…총선·대선 이슈화
고용·임금 유연한 '실력사회'로 가야"

오형규 논설위원



처음엔 귀를 의심했다. 평소 알고 지내는 교사의 말이, 교사 정년(현재 62세)을 1961년생부터 단계적으로 65세로 올린다는 소문이 돈다고 한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싶었다. 다른 교사들에게 물어보니 반신반의, 금시초문이라면서도 “그럴지도 모른다”는 반응이다.

진짜 정년연장이 가능할까. 현재 초등교사 임용 대기자만도 2200여 명에 이른다. 2025년까지 대학 교육계열 인력은 17만4000명 초과 공급될 것이란 전망(한국고용정보원)도 있다. 학령인구 감소로 지난해 서울에서만 700개 학급이 사라졌다. 이런 판국에 정년연장이 가당키나 할까.

지금은 황당해 보이지만 정년연장은 ‘꺼진 불’이 아니다. 19대 국회 때 유성엽, 이낙연, 정성호 의원 등이 교사 65세 정년안(교육공무원법 개정안)을 발의한 적도 있다. 정치권이 표만 된다면 언제든 다시 꺼내들 카드다. 교사뿐 아니라 공무원, 일반 국민까지 ‘정년 65세’ 공론화가 그리 머지않았다는 얘기다.

그럴듯한 명분도 있다. 세계적 추세이며, 저출산·고령화로 생산인구가 줄기 시작했고, 연금과 정년 사이의 공백이 커진다는 것이다. 초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20% 초과)인 일본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등은 정년을 65~67세로 늦췄다. 한국도 2025년이면 초고령사회다.

더구나 국민연금을 받는 연령은 5년마다 1년씩 늦춰져 2029년부터는 65세가 된다. 공무원도 1996년 이후 임용자는 65세가 돼야 연금을 받는다. 60세 정년 이후 5년간 공백이 생긴다. 실제로 정부는 정년과 연금 수급연령에 대한 사회적 합의 도출을 검토했다. ‘귀족노조’들이 해마다 정년연장을 요구안에 넣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때문에 정치권 안팎에선 2013년 ‘정년 60세 의무화’ 이후 10년 안에 정년 재연장이 강력한 이슈로 떠오를 것으로 점친다. 그 시기는 이르면 2020년 총선이나 2022년 대통령 선거가 될 것이다. 지난해 대선 때 ‘최저임금 1만원’처럼 각 당이 ‘정년 65세’ 공약을 덥석 물 수도 있다.

유권자 분포도 그게 먹힐 만한 구도다. 통계청 인구추계에 따르면 2022년 대선 때 정년연장 수혜자인 50대(863만 명)가 20대(668만 명)보다 200만 표 많다. 잠재 수혜자인 40대(813만 명)까지 합치면 1000만 표 차이다. 정치인은 덩어리 큰 유권자 집단에 아부를 잘 한다.

인구학자인 조영태 서울대 교수는 ‘58년 개띠’와 ‘70년 개띠’ 싸움에 청년들 등이 터질 것으로 내다봤다. 베이비부머 1세대(1955~1964년생)가 정년 60세로 수혜를 봤다면, 이보다 더 많은 2세대(1965~1974년생)는 아예 은퇴를 없앨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중심에 포진한 586세대는 두 번의 정년연장으로 희대의 ‘꿀 빠는 세대’가 될지도 모른다.

정년은 고령화, 생산인구 감소, 연금, 임금체계, 고용유연성 등과 복잡한 함수관계가 있다. 지난번처럼 한 번 고용하면 평생 해고가 불가능하고, 연공서열급(호봉제)은 내버려둔 채 정년만 불쑥 늘렸다간 취업절벽을 넘어 ‘취업 크레바스’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대기업 노조에 맞춰진 친(親)노조 정책은 정규직에는 천국이지만 취준생들에게는 지옥이다. 최저임금, 통상임금, 근로시간 등 손대는 것마다 노동비용이 눈덩이다. 기업이 안 뽑는 게 아니라 못 뽑게 만들고 있다. 생산인구가 줄면 고용이 개선될 것이란 기대도 착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022년 이후가 되면 청년고용 압박이 줄어들 수도 있다”고 했지만, 일자리는 노동수급보다 경제상황에 달렸다.

‘일자리 세대전쟁’을 막으려면 경제활성화로 파이를 키우는 길밖에 없다. 미국 영국 캐나다처럼 아예 정년을 폐지하고, 고용·임금이 유연한 ‘실력사회’로 가는 게 정답이다. 60세 넘어 일하고 싶은 사람도 있고, 쉬고 싶은 사람도 있다. 다른 것은 안 고치고 또 ‘정년 65세’로 획일화를 강요한다면 청년들에게 진짜 ‘헬조선’이 열릴 것이다. 고령화할수록 청년을 위한 나라는 없다.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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