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 헐~ 근로시간 단축 아슬아슬 줄타기… 노사 비명소리만

입력 2018-03-02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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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2시간 조기 시행하는 대기업 들여다보니…

일은 그대로인데 근로시간만 줄어
노트북 가지고 카페서 야근해야
외부 미팅·식사도 근로시간인지…

CEO, 근로준수했다 증거 남겨야
삼성전자, 분단위로 근태 체크
직원 퇴근하면 임원이 대신 야근



[ 좌동욱/노경목 기자 ]
“주 60시간이 넘던 근무시간을 갑자기 40시간으로 줄이라는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해야 할 일은 그대로인데 ‘뒷감당’을 어떻게 할지 걱정입니다.”(국내 전자업체 연구개발 직원)

“회사 직원이 수만 명인데 그중 한두 명이라도 근로시간 기준을 어기면 제가 형사처벌을 받는 건가요?”(국내 한 대기업 사장)

오는 7월부터 종업원 300명 이상 대기업에 근로시간 단축(주 최대 근로시간 68시간→52시간)이 예고된 가운데 이미 선제적으로 근로시간을 줄인 삼성전자 LG전자 SK하이닉스 신세계 등의 임직원은 예상치 못한 부작용도 적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새로운 근무제도 시행을 위한 인프라 투자와 추가 고용도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뜻하지 않은 비용

주 최대 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해본 기업은 기존의 근무 시스템을 바꾸기 위해 적지 않은 인력과 자금이 필요하다고 털어놨다. 삼성전자는 지난 1월부터 근무시간과 휴식시간을 엄격하게 구분하는 새로운 근무관리 시스템을 갖췄다. 직원 본인뿐 아니라 직속 상사도 근무 시간을 분 단위로 실시간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LG전자, SK하이닉스 등 지난달부터 주 52시간 제도를 자율 시행하는 대기업도 이와 비슷한 정보기술(IT) 인프라를 깔고 있다. 이 같은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는 상당한 비용이 든다. 삼성전자 같은 기업에는 미미할 수 있지만 향후 중견·중소기업엔 버거울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시간당 근무시스템을 가동하고 있는 제조업체의 부담이 크다. 신세계그룹은 올 1월부터 하루 7시간씩 주 35시간 근무제를 도입했다. 이를 준비하는 데 걸린 기간만 2년이다. 하지만 제조계열사인 신세계푸드는 주 35시간을 도입하지 못했다. 충북 음성 등 전국 6곳에 흩어져 있는 간편식 제조공장과 한식 뷔페 매장 등에서 인원을 추가로 고용해야 하는 부담 때문이다.

식품업계 관계자는 “연매출 1조2000억원에 고용 인원이 4800명에 달하는 신세계푸드도 근로시간을 쉽게 줄이지 못하는데 중소업체는 오죽하겠느냐”고 했다. 성수기와 비수기가 확연히 갈리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에어컨 제조 라인도 고민이 많다. 주 52시간 근로제를 도입하려면 3~9월 성수기 현장에서 근무하는 인원을 더 고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파견인력을 받는 방안도 강구할 수 있지만 전문성 부족 등으로 한계가 있다.

연구개발(R&D) 같은 전문분야 인력은 대체 인력을 찾기가 쉽지 않고 단기간에 생산성을 끌어올리기도 어렵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일수록 이런 전문직 비율이 높다. 삼성전자는 국내 전체 임직원(9만3000여 명)의 47%인 4만4000여 명이 R&D 직군에서 일한다.


법적 분쟁 가능성 높아

현장에선 갑작스러운 근무 시스템 개편에 따른 ‘불만’도 터져나온다. 신제품 출시 시기나 상·하반기 채용 시즌 등 특정 시기에 업무량이 집중되는 R&D, 인사부서 직원들이 대표적이다. 업무량과 실질 근로시간은 그대로인데 명목상 근로시간만 줄였다는 것이다.

지난달 26일부터 주 52시간을 시범 시행한 한 대기업 관계자는 “지난주엔 퇴근을 종용하는 부서장과 회사에 남아 근무하겠다는 부하 직원이 실랑이를 벌이더라”며 “이상한 규제가 생겨 회사에서 해야 할 일을 커피숍이나 집에서 하게 생겼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야간 근로와 휴일 근무가 사라지면서 임금이 줄어드는 것도 직원들에겐 불만이다. 통상 휴일 근로는 평소 임금의 1.5배를 받는다. 웬만한 대기업에선 하루 8시간 기준 20만~40만원에 달한다. 근로기준법 규제를 받지 않는 임원들은 오히려 업무량이 더 늘어났다. 부하 직원이 퇴근한 뒤 남은 일을 떠맡는 부서장이 나오고 있다는 후문이다.

경영진은 앞으로 바뀔 근로시간 규제가 노사 분쟁에 악용될 가능성도 우려하고 있다. 주 52시간 근무제를 어긴 사업주는 형사처벌(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을 받는다. 사업주는 회사 대표이사, 관련 업무 부서장, 해당 기업 등을 의미한다.

이런 상황에서 경영진이 법적 리스크를 피하려면 평소 주 52시간 근로제 준수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근거를 남겨야 한다. LG전자가 ‘주 52시간’ 근로제를 대비한다고 하면서 이보다 훨씬 더 엄격한 ‘주 40시간’ 근무를 직원들에게 주문하는 이유다. 하루 8시간씩 5일간 40시간 근무를 하면서 연장 근무나 휴일 근무는 가급적 하지 말라는 취지다.

법 규정이 모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자택 근무나 외근처럼 근무 시간을 명확하게 기록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 문제다.

김영완 한국경영자총협회 노동정책본부장은 “그동안 노사 간 근무시간 관련 분쟁이 별로 없던 이유는 현행법상 허용되는 주당 근로시간(68시간)을 넘기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주 52시간 근로제가 확대되면 분쟁도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좌동욱/노경목 기자 leftk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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