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SM상선도 공동운항 나서야"
김인현 <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한국해법학회 회장 >
일정한 항구를 일정한 요일에 기항하는 정기선 서비스는 컨테이너 선박을 이용한 운송이 대표적이다. 국적 정기선사는 한국 화주들을 위한 고속도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작년 한진해운 파산 이후 우리나라 외항정기선사는 치열한 국제경쟁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 들어 우리 외항정기선사를 살리기 위한 제안이 쏟아지고 있다. 대형 컨테이너 선박을 동시에 여러 척 건조해 규모의 경제를 꾀하며 특화서비스를 해야 한다거나, 우리 정기선사에 싣는 우리나라 화물의 적취율을 50%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주장들이다.
이런 제안은 이상적이지만 선사 자체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외부로부터 도움이 있어야 한다.
우리 선사끼리 경쟁력을 높여 적자폭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우리 선사 간 공동운항을 통해 비효율을 줄이고 경비를 절감해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다.
한국에서 미국 서부에 A, B 두 선사가 한 척씩 동일한 요일에 정기선을 띄운다고 가정하자. 화물이 많지 않기 때문에 각각 선복(선박의 화물 적재 공간)의 50%만 싣고 항해를 한다. 이제 두 선사가 힘을 합쳐 한 척만 미국 서부노선에 투입하기로 한다. 그러면 A 선사의 선박에는 과거 두 척의 선박에 50%씩 실렸던 화물이 가득 실린다. 그런 다음 두 회사는 미국 동부로 가는 항로를 개척해 B 선사의 선박을 투입한다. 이 노선의 화물운송을 위해 외국 정기선사를 이용하던 우리 화주들을 설득해 물량을 받으면 된다.
이런 방식으로 공동운항을 하면 선박의 활용도를 높이고 비용을 줄여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제도는 얼라이언스 소속 정기선사들이 슬로트 용선(지정항로 용선) 계약을 체결할 때 영위해온 전략이다. 그렇지만 반드시 얼라이언스 소속 정기선사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최근 아시아항로를 운항하는 15개의 정기선사(인트라 아시아선사)가 결성한 한국해운연합(KSP)은 이런 항로구조조정 및 공동운항을 통해 중복되거나 비합리적인 항로에서 운항선박을 조절함으로써 효율성을 높여나가고 있다. 외부의 힘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선사 스스로 경영합리화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외부에서 보기에도 안심이 된다고 할 수 있다. 2000년대 초반, 해운호황기에 불황에 대비한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해 질타를 받아온 해운업계로서는 교훈적인 조치라고 할 수 있다.
현대상선은 여전히 높은 용선료 부담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진해운의 미주항로를 인수한 SM상선은 신생 정기선사이므로 대형 외국 정기선사와 경쟁하기에는 힘에 부치는 상태다. 미주항로를 기반으로 하는 원양정기선사인 현대상선과 SM상선이 오늘의 어려움을 극복하려면 수익을 극대화하고 비용을 최소화하는 공동운항을 실현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이런 공동운항 조치는 우리 정기선사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들 선사가 내부적으로도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특히 해외의 경쟁 정기선사들은 물론 화주들에게도 우리 외항정기선사가 이제는 안정되고 있다는 신뢰를 심어주는 긍정적인 기능도 할 것이다.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