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라 생활경제부 기자) 봄이 되면서 ‘벚꽃 한정판 마케팅’이 홍수입니다. 아마 4월까지는 계속될 겁니다. 과자에도, 음료에도, 다이어리와 옷과 신발에도. 누가 먼저였는 지, 언제부터였는 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비슷비슷한 마케팅을 펼치는 계절입니다. ‘한정판’이 나오면 ‘소장하고 싶다’는 반응이 나와야 하는데…. 너무 흔해진 이미지가 피로하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개성 없는 한정판 마케팅에 지쳐가고 있다면, 조금 특별한 한정판 마케팅을 소개하려 합니다. 세계 최초의 생수, 에비앙입니다.
알프스 산맥이 그려진 프랑스 프리미엄 생수 에비앙. 에비앙은 140년 전 세계 최초로 ‘먹는 물’을 상품화한 기업입니다. 물을 약의 개념으로 승화한 최초의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프랑스 작은 마을 에비앙에서 끌어올린 지하수는 알프스에서 녹아내린 만년설이 두꺼운 빙하 퇴적물을 통과하며 미네랄 성분을 많이 갖고 있다고 합니다. ‘캬샤의 물’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소개된 에비앙 지하수는 1878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공식 판매 허가를 받았지요. 에비앙 물병에 새겨진 산맥 모양의 로고는 20세기 초반에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마을 옆 호수가 있는데 사람들이 자꾸 “호숫가에서 퍼온 물 아니냐”고 오해하자 알프스 물이라는 걸 강조하기 위해 디자인을 했답니다.
국내에는 물을 사먹는 개념조차 생소했던 1990년대 중반 수입됐습니다. 당시 호텔에서나 판매되던 ‘비싼 물’이었는데 지금은 수십 종의 생수 사이에서 경쟁하는 물이 됐지요. 20여 년 만에 국내 생수 시장은 약 1조원에 달할 만큼 커졌습니다. 푸른 빛 병에 핑크색 로고와 알프스 산맥. 그 자체만으로 프리미엄의 상징이었던 시간은 과거가 됐습니다. 경쟁자가 많아지면서 에비앙은 2000년부터 ‘한정판 마케팅’에 나섭니다. 밀레니엄을 맞아 출시한 물방울 에디션, 향수병을 연상케 하는 고급스러운 빙하 에디션 등 매년 새로운 한정판을 내놨습니다.
2008년부터는 세계적인 디자이너들과 손잡습니다. 크리스티앙 라크루와, 장 폴 고티에, 폴 스미스, 이세이 미야케, 다카다 겐조, 알렉산더 왕 등이 에비앙 생수병 디자인에 참여했습니다. 지난해에는 21세기 최고 패션 아이콘으로 평가 받는 이탈리아 출신의 디자이너 키아라 페라그니와 협업했습니다. 1987년의 젊은 예술가로 역대 콜라보했던 디자이너 중 최연소라고 하는군요. 키아라 페라그니 한정판 페트병은 5일 국내 출시됐습니다. 출시를 기념해 130만원 상당의 상품권과 한정판 유리병을 제공하는 이벤트도 열린다고 합니다.
140년 된 물 회사가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선택한 한정판 마케팅. 지금까지 약 1300만 병 이상 팔렸답니다. 2010년 폴 스미스 버전의 에비앙은 500ml 한 병에 2만5000원이었지만 내놓자마자 매진되기도 했고요. 일부 에디션은 아마존 등 중고 거래 시장에서 고가에 거래되기도 하고, 매년 한정판을 기다리는 마니아도 생겨났다는군요. 마케팅 전문가들은 에비앙의 이 같은 한정판 마케팅이 △강력한 브랜드 인지도 △20년간 이끌어온 장기적 협업 체계 △독창적인 디자이너 섭외 △자신만의 정체성을 살리는 철학 등을 기반으로 성공했다고 입을 모읍니다. 20년 뒤 우리에게도 이런 기업이 있기를 바라봅니다. (끝) / destinybr@hankyung.com
■ 에비앙 역대 한정판 디자이너
△2008년
크리스티앙 라크루와(Christian Lacroix)
△2009년
장 폴 고티에(Jean Paul Gaultier)
△2010년
폴 스미스(Paul Smith)
△2011년
이세이 미야케(Issey Miyake)
△2012년
앙드레 꾸레쥬(Andre Courreges)
△2013년
다이안 본 퍼스텐버그(Diane Von Furtstnberg)
△2014년
엘리 사브(Elie Saab)
△2015년
다카다 겐조(Kenzo)
△2016년
알렉산더 왕(Alexander Wang)
△2017년
키아라 페라그니(Chiara Ferrag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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