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 & Biz] 쉬쉬하지만 연 3만건… 성범죄는 법조시장 '새 노다지'

입력 2018-03-06 19:04   수정 2018-03-07 06:41

'미투 바람' 타고 수요 급증
3심 땐 수임료 최소 5000만원
고위전관·대형로펌까지 수임 나서

불법 브로커·과장광고도 판쳐
"소송 지더라도 소문 못 낸다"
무죄 입증 가능성 부풀리기도
'성추행 전문' 문구는 불법광고



[ 고윤상 기자 ] 성(性) 관련 범죄가 변호사업계의 주요 일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신고 의식의 보편화로 수사선상에 오르는 사건이 늘고 있어서다. 최근 성범죄 피해자들의 피해 폭로를 일컫는 ‘미투(Me too)’ 운동까지 활발해지면서 업계도 때아닌 특수를 맞는 분위기다. 덩달아 사건 브로커들과 변호사들의 허위·과장 광고도 만연해 주의가 요구된다.

법조타운 주요 일거리 된 성범죄 사건

서울 서초동 변호사업계에서 성범죄 사건 수임은 활발하지만 은밀하다. 성범죄 사건을 주요 수입원으로 삼는 사무실이 적지 않지만 내세우진 않는다. ‘자랑할 만한 사건’이 아니라는 법조계의 암묵적 분위기 때문이다.


현실은 뜨거운 시장이다.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2016년 검찰에 접수된 성범죄 사건은 총 2만9357건이다. 10년 전인 2007년 1만4344건에 비해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단순 계산으로 따져봐도 전체 변호사(약 2만3000명)가 연간 1건 이상씩 사건을 맡을 수 있을 정도다. 이 중 성추행 사건은 1만4339건으로 48.8%를 차지한다.

고소에 이르지 않은 채 변호사 중재로 끝난 사건까지 하면 훨씬 더 많은 사건이 서초동을 거쳐 간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김진우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는 “초기 대응에 따라 한 사람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뀔 수 있는 게 성범죄 사건”이라며 “피해자들도 초기에 관련 증거를 정확히 확보하고 신속히 고소에 나서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

변호사들에게 성범죄 사건은 다른 형사사건보다 돈이 된다. 경찰 수사단계에서부터 변호사 조력이 필요하다. 착수금으로만 최소 500만~1000만원이 든다. 수사기관이 피고인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일이 잦아 추가 비용이 만만찮다. 영장 청구 대응 비용만 1000만원을 웃돈다.

활동비도 든다. 의뢰인이 무죄를 주장하면 변호사는 이를 입증하기 위해 사실관계 파악에 나선다. 사설탐정처럼 관련 기록을 살피는 일이다. 당사자 간 통화나 대화기록, 차량 블랙박스 확인은 기본이다. 고소인 측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직장 기록 등도 파악한다.

“성범죄 사건 맡지 않을 이유 없다”

성범죄 사건은 재판이 끝날 때까지 한 변호사에게 맡기는 게 일반적이다. 재판 단계에서 판사 출신 변호사로 갈아타는 사례가 많은 다른 형사사건과 다른 점이다. 민감한 내용 때문이다. 간단한 성범죄 사건도 2·3심까지 진행하면 최소 5000만원은 든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사건이 복잡하고 혐의가 중대할수록 비용은 천정부지다.

검사장이나 법원장을 지낸 중량급 변호사들은 통상 마약 사건과 더불어 성범죄 사건 수임을 꺼린다. 대형 로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관련 수요가 커지고 업계 불황까지 겹치면서 손을 뗄 수 없는 분야가 됐다. 검사장 출신 한 변호사는 “성범죄 사건이라고 해서 굳이 안 받을 이유가 없다”며 “후배 변호사에게 넘기거나 조용히 처리하는 사건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형 로펌도 알음알음 수임에 나선다. 한 대형 로펌 파트너 변호사는 “로펌 차원에서는 사건 상담이나 의뢰를 받지 않는 곳이 많지만 개인 자격으로 수임하는 건 말리지 않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일부 전관 중심의 대형 로펌에서는 ‘주요 일거리’로 성범죄 사건을 빼놓을 수 없을 정도다.

브로커·과장 광고 만연

시장이 커지면서 관련 브로커들의 불법 행위나 변호사들의 과장 광고도 판을 치고 있다. 김진우 변호사는 “당사자의 불안한 마음을 이용해서 단기간에 많은 돈을 받을 수 있는 게 성범죄 사건”이라며 “브로커나 허위광고가 활개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서초동의 12년차 변호사는 “경찰관 출신 브로커들이 가장 활개치는 분야가 성범죄 사건”이라며 “여러 곳에 얘기할 수 없다는 점을 악용해 무죄 입증 가능성을 부풀리는 사례가 부지기수”라고 설명했다. 고소인·피고소인 모두 사건 초기에 시간에 쫓기면서 제대로 된 법률 상담을 받아보지도 못한 채 ‘사무장’ 명함을 단 브로커 말만 듣고 사건을 맡기기 일쑤라는 것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온라인에서는 불법 광고도 범람하고 있다. 포털사이트에서는 성추행 전문을 내세운 변호사 광고가 많다. 하지만 변호사법상 ‘전문’이란 용어를 쓰기 위해선 일정한 자격 요건이 필요하다. 등록가능한 59개 전문 분야 중 성범죄 분야는 없다. 모두 불법 광고라는 얘기다. ‘성추행 전문’ 문구를 사용한 한 법무법인 관계자는 “광고 업체가 임의로 단 문구”라고 둘러댔다. 대한변호사협회 관계자는 “변협 차원에서도 불법 광고를 지속적으로 단속하고 있다”며 “불법 광고나 브로커를 내세우는 변호사는 피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조언했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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