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삶 일깨운 음식 vs 지질한 사회 민낯… 명품 연극 '앙코르'

입력 2018-03-06 19:42  

'가지' 18일까지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서 공연
'옥상 밭 고추는 왜' 내달 12~22일 세종M씨어터서



[ 마지혜 기자 ]
잘살아보겠다며 혼자 미국으로 건너온 아버지가 가장 좋아한 음식은 ‘제일 싼 거’였다. 아들이 빅맥 버거가 먹고 싶다고 하면 1달러짜리 버거 두 개를 사서 2층으로 쌓아줬다. 아들이 비싼 요리용 칼을 사온 날, 아버지는 아들의 신용카드를 칼로 두 동강 냈다. 요리사 자격증을 딴 아들이 프랑스 요리를 대접한 날엔 좀체 손을 대지 않다가 늦은 밤 몰래 부엌으로 나와 라면을 끓여 먹었다. 이 모습을 본 아들은 충격과 부끄러움, 허탈함에 몸을 떨었다.

아버지와 아들은 평생 서로의 간극을 좁히지 못했다. 너무 달라서 몰랐고, 모르니 더욱 달라졌다. 시간은 부자(父子)의 아쉬움이나 후회와는 상관없이 흘러 아버지는 임종을 앞둔 힘 없는 노인으로 아들 집에 누웠다. 아들은 서로에게 솔직하지 못했던 순간들을 뒤로하고 아버지를 위한 마지막 한 끼 식사를 준비한다.

한국계 미국인 작가 줄리아 조가 극본을 쓴 작품 ‘가지’의 내용이다. 국립극단이 지난해 6~7월 처음 선보인 이 작품을 오는 18일까지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다시 공연한다. “음식을 소재로, 아버지로 상징되는 한민족의 뿌리를 재발견하는 의미를 지닌 수작”이라는 평과 함께 지난해 12월 제54회 동아연극상 작품상을 받은 연극이다. 초연과 같이 정승현이 연출하고 김재건 김종태 김정호 신안진 우정원 등이 연기한다.

‘가지’는 사람 간의 관계와 그런 관계가 있는 삶을 소박한 한 끼의 감동과 버무려 전한다. 작품 속에서 아들 ‘레이’가 아버지의 마지막 밥상에 올리는 음식은 소고기뭇국이다. 아버지가 미국으로 떠나기 전날 밤, 할머니는 진한 소고기뭇국을 끓였다. 아버지는 눈물을 떨궜지만 예정대로 미국행 비행기를 탔다. 형의 죽음을 앞두고 레이에게 이 이야기를 전하는 삼촌은 조카에게 당부한다. “기가 막히게 만들어. 울 형님이 더 달라고 하시게. 이번에는 떠나지 못하게…”. 이예은 호원대 공연미디어학부 교수는 “음식의 맛을 빌려 희소한 삶의 생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죽음을 바라보는 온기 어린 시선으로 생을 보듬는 연극”이라고 평했다.

장우재 작가의 극본으로 서울시극단이 창작한 ‘옥상 밭 고추는 왜’도 다음달 12~22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재공연한다. 지난해 10월 초연 이후 한국연극평론가협회의 ‘올해의 연극 베스트 3’와 한국 연극 선정 ‘올해의 연극 베스트 7’에 뽑힌 작품이다. 김광보 연출과 초연 무대에 올랐던 고수희, 이창훈, 이창직, 유성주 등 원년 배우가 다시 모여 공연한다.

재건축을 앞둔 낡은 빌라에서 개인적이고도 정치적인 갈등들이 터져 나온다. 우악스럽게 한세상을 헤쳐 오면서 나이 든 ‘현자’는 재건축 추진과 관계된 이유로 이웃 ‘광자’를 괴롭히고, “별것들이 다 나서서 노력한 사람들한테 기대 살려고 한다”고 절규한다. 아무것도 되는 일 없이 세상의 부조리에 분노하는 청년 ‘현태’는 같은 빌라 ‘현자’를 향해 분노를 폭발시킨다. 갈등과 혼돈의 실상 그대로를 오래 들여다본다. 그 집요하고 진득한 시선에서 작품의 힘이 나온다.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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