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시업계 '등쌀'에 못 견딘 카풀 스타트업 "사업 접을 판"

입력 2018-03-07 17:28   수정 2018-03-08 05:21

혁신 가로막는 기득권 벽을 깨자
(3) 신산업 성장 가로막는 기득권

2013년 한국에 상륙한 우버
불법 낙인 찍혀 2년 만에 철수

'심야 전세버스' 콜버스랩도
빛도 못본 채 주력사업 바꿔

'카풀 서비스업체' 럭시 창업자
"카카오에 회사 매각 안했으면
사업 이어갈 수 없었을 것"

'온라인 전·월세 중개' 집토스
공인중개사 집단시위로 '홍역'



[ 이승우 기자 ] 우버, 콜버스랩, 풀러스, 럭시….

이 회사들은 기존 교통 서비스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을 목표로 세워진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들이다. 또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택시업계의 반발에 부딪쳐 사업을 포기했거나 어려움을 겪었다.

이런 좌절은 단지 교통 분야만의 문제는 아니다. 새로운 아이디어로 무장한 스타트업이 등장할 때마다 기존 시장의 기득권 세력의 반발로 사업을 중도 포기하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정부는 스타트업을 한국 경제의 신성장동력으로 키워야 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현장에선 기존 사업자들의 손을 들어주기 일쑤다. 세계 주요 국가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앞다퉈 규제를 완화하고 있지만 한국은 이 같은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카카오에 회사 안 팔았으면 사업 못 했을 것”

우버는 세계에서 가장 큰 스타트업이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CB인사이트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우버의 기업가치는 680억달러(약 73조6000억원)에 이른다. 우버 다음으로 큰 스타트업도 ‘중국판 우버’로 불리는 디디추싱이다. 기업가치는 560억달러(약 60조6000억원)다. 이 밖에도 그랩(동남아시아), 올라(인도), 리프트(미국) 등 승차공유 업체들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승차공유 서비스 시장이 날로 커지고 있지만 한국에서 우버와 같은 서비스는 불법이다. 우버는 2013년 승차공유 서비스 ‘우버엑스’로 서울에 진출했다. 우버의 서비스는 기존에 없던 종류의 사업이었기 때문에 승용차의 유상운송을 금지한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을 적용해야 하는지 논란이 있었다. 우버는 무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며 서비스가 합법화되기를 기대했지만 택시업계가 강하게 반발하면서 정부와 서울시가 우버에 ‘불법’ 딱지를 붙였다. 결국 우버는 2년 만에 한국에서 승차공유 서비스를 포기했다. 한국에서 승차공유 서비스가 나올 수 있는 길도 막혀버렸다.

스타트업 콜버스랩도 택시업계의 등쌀에 못 이겨 사업이 쪼그라들었다. 이 회사는 심야시간에 남는 전세버스를 활용해 귀가 방향이 같은 사람들을 태워주는 플랫폼 콜버스를 개발했지만 택시업계는 불법이라며 서울시와 국토교통부 등에 민원을 제기했다. 국토부는 콜버스랩이 택시업체의 심야 콜버스 서비스에 협력사로 참여하는 중재안으로 갈등을 무마했지만 정작 콜버스랩은 사업을 주도할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택시업체들이 콜버스 사업을 확장할 의지를 보이지 않자 콜버스랩은 결국 전세버스 예약 플랫폼으로 주력 사업을 바꿔야 했다. 정작 우버가 미국에서 콜버스와 비슷한 방식의 카풀 서비스 ‘우버 익스프레스 풀’을 내놨다.

택시업계와 카풀 서비스 업체들인 풀러스, 럭시 간의 갈등은 현재진행형이다. 이 회사들은 현행법상 출퇴근 카풀에 한해 유상운송이 가능하다는 점을 이용해 출퇴근 시간에만 가능한 승차공유 서비스를 내놨다. 풀러스가 지난해 11월 사실상 아무 때나 이용할 수 있는 ‘출퇴근 시간 사전 선택제’를 선보이자 택시업계는 이를 불법으로 판단, 국토부와 서울시에 고발했다.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택시업계와 승차공유 업체 간 갈등을 중재하기 위한 자리를 마련하려 했지만 택시업계가 연이어 불참하면서 아직까지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최근 카카오에 회사를 매각한 럭시의 창업자 최바다 대표는 “일개 스타트업이 택시업계와 동등한 입장에서 대화하기란 불가능하다”며 “대기업인 카카오가 인수하지 않았다면 카풀 사업을 이어가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토로했다.

부동산·핀테크 등 모든 분야에서 갈등

비단 택시업계뿐만이 아니다. 소비자들의 불편함을 해소하는 서비스가 나올 때마다 이 같은 갈등이 되풀이된다.

2016년 서울대 학생 3명이 의기투합해 세운 온라인 전월세 중개 스타트업 집토스는 집주인과 세입자 중 집주인에게만 중개 수수료를 받는 ‘반값 수수료’ 정책을 차별점으로 내세웠다. 주머니가 가벼운 학생과 직장인을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이었다. 공인중개사들은 “시장 질서를 교란시킨다”며 반발했다. 지난해 집토스가 강남과 관악, 왕십리 등에 오프라인 매장을 내자 해당 지역의 공인중개사들이 가게 앞에서 릴레이 시위를 벌이는 일까지 벌어졌다.

공인인증서가 필요 없는 간편송금으로 인기를 모은 핀테크(금융기술) 서비스 ‘토스’도 은행들의 반발로 서비스를 준비하는 데만 1년6개월가량 걸렸다. 이 서비스를 개발하기 위해선 은행과의 협력이 필수적인데 은행으로선 굳이 더 편한 서비스가 필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토스의 간편송금 서비스가 출시되고 이용자가 빠르게 늘어나자 그때서야 은행들은 공인인증서가 필요 없는 송금 서비스를 내놓기 시작했다.

B2B(기업 간 거래) 축산물 직거래 플랫폼 ‘미트박스’를 서비스하는 글로벌네트웍스는 사업 초기 육류 유통업자들로부터 항의를 받았다. 이전까지 육류 상품은 원가와 유통 마진을 알 수 없는 ‘깜깜이 시장’이었다. 미트박스는 서울 마장동 시장의 도매가격을 모두 공개해버렸다. 김기봉 대표는 “사용자가 늘어나면서 이 같은 반발이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한목소리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존 산업 종사자들은 새로운 기술과 업종의 등장으로 생존에 위협을 느낄 수밖에 없다. 정부가 중간에서 신산업 육성과 기존 산업 보호의 균형을 맞춰야 하는데 관습적으로 기존 제도를 따르다 보니 스타트업이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점점 줄어든다는 게 이들의 불만이다. 박희재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는 “공무원들이 시장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새로운 산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더 관심을 둬야 한다”며 “기업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는 원칙을 세우면 이 같은 갈등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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