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동조선 결국 법정관리
2010년 채권단 자율협약
'말로만' 강도높은 자구계획
감원·사업재편 제때 못해
채권단도 할 말 있다?
"세계 조선업 극심한 불황
중국 업체, 선박수주 싹쓸이"
[ 박신영/정지은 기자 ]
“수출입은행이 8년 가까이 주채권은행으로 있으면서 성동조선해양의 경영정상화를 이루지 못한 점에 대해 관리 책임을 느낍니다.”
은성수 수출입은행장은 8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수은 등 채권단이 2010년 채권단 자율협약을 맺은 뒤 자금지원 2조7000억원, 출자전환 1조5000억원 등 총 4조2000억원을 지원하고도 성동조선을 살리지 못한 점에 대한 반성이었다.
금융계와 조선업계 등 시장에선 성동조선이 막대한 자금을 투입받고도 살아남지 못하고 법정관리로 들어가기로 한 것은 채권단의 ‘실기(失機)’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수은과 산업은행 등이 매번 정치권의 눈치를 보느라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하지 못했고, 그렇다고 법정관리 혹은 청산과 같은 결단을 내리지도 못했다는 비판이다.
◆10년간 미온적 구조조정 처방
수은을 비롯한 채권단은 2010년 성동조선에 대한 자율협약을 맺은 뒤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예고했다. 조직·인력 감축, 원가절감, 수익성 있는 선박 선별 수주 등을 주요 골자로 하는 정상화 계획 및 자구계획 등을 수립했다. 하지만 채권단이 신규자금 지원과 출자전환 등 각종 지원은 지속적으로 해왔지만 구조조정 부문에선 미흡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감사원은 2016년 5월에도 수은이 성동조선에 대한 인적·물적 구조조정안을 마련했지만 이를 스스로 지키지 않아 영업손실이 불어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당시 감사원 감사에 따르면 수은은 2013년 성동조선해양의 적자수주 물량을 당초 기준의 2배(44척)로 과도하게 허용했고, 영업손실액은 588억원 증가했다.
한 조선사 관계자는 “성동조선도 2016년에는 처음 흑자전환을 하면서 정상화 조짐을 보인 적이 있다”며 “그때 인력감축과 수익성을 고려한 사업 재편 등을 단행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조선업 불황 등 상황 악화
채권단도 할 말은 있다. 2010년 이후 글로벌 조선업계가 불황이다. 여기에다 중국 조선업체들이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치고 올라오면서 한국 조선업체의 수주는 급속도로 줄고 있다. 성동조선이 아무리 자구노력을 한다고 해도 중국 업체의 가격 공세를 이겨내기 힘들었다는 설명이다. 영국 조선·해운 분석기관인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선박 수주잔량은 2008년 2억1200만CGT(재화중량톤수)에서 지난해 7700만CGT로 급감했다. 이 중 80%가량을 중국이 싹쓸이하고 있다. 성동조선도 수주잔량이 현재 5척에 불과하다.
다른 조선사 관계자는 “아무리 구조조정을 이어가도 조선사가 배를 만들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냐”며 “과잉설비 해소와 인력 구조조정 얘기를 하지만 조선 경기가 회복될 수 있다는 기대 때문에 이마저도 적극적으로 추진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번에도 정치권 의식
정부와 채권단이 STX조선에 대해 ‘조건부 생존’ 결론을 내린 데에는 정무적 판단이 상당히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성동조선과 함께 STX조선까지 법정관리에 넣을 경우 조선산업 생태계가 파괴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었지만, 이면에선 오는 6월 있을 지방선거를 의식했다는 후문이다.
삼정KPMG는 성동조선과 STX조선 컨설팅 결과 두 회사 모두 청산가치가 존속가치보다 높은 것으로 분석했다. 산은 역시 이날 발표에서 “STX조선은 중형 탱커선에서 높은 시장 점유율을 보였으나 국내 및 해외 업체들과의 경쟁 심화 및 기술격차 축소, 원가 경쟁력 상실 등으로 정상화가 불확실하다”고 밝혔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성동조선과 STX조선 두 회사 모두 법정관리를 신청하면 정치권의 비판 여론을 감당하기 힘들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고 말했다.
성동조선보다 STX조선에 투입된 자금이 더 많은 것도 고려 요소 중 하나로 전해졌다.
박신영/정지은 기자 nyus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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