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iz 칼럼] 불평등은 사회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입력 2018-03-11 18:11  

기득권의 고착화는 문제이지만
자연의 분자도 에너지 차이나듯
어느 정도의 불평등은 용인해야

송치성 < 한국기계연구원 책임연구원 >



자연에서는 강한 개체가 모든 것을 차지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다. 인간사회 역시 부(富)와 권력의 집중은 심각한 문제다. 그렇다면 생명이 없는 분자의 세계는 어떨까. 물질을 구성하는 분자조차 똑같은 에너지를 갖고 있지 않다. 분자 중에는 에너지가 없어서 꼼짝 못하는 ‘가난한’ 분자도 있고, 총알처럼 빠르게 날아다니는 ‘부자’ 분자도 있다. 다만 나라에 따라 부자 비율이 크게 다른 인간사회와는 달리 분자의 세계에서는 온도만 정해지면 ‘볼츠만 분포’라는 규칙에 따라 부유한 분자와 가난한 분자 비율이 결정된다.

어떤 물체에서나 상위 20% 분자가 총에너지의 46%를 차지하고, 하위 20% 분자는 총에너지의 4%를 나눠 갖는다. 상위 20%가 총자산의 80%를 차지하는 우리보다는 괜찮은 편이지만 자연도 평등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평균 에너지를 가진 ‘중산층’이 60%를 넘고, 평균보다 100배 이상의 에너지를 가진 분자는 있을 수 없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와 크게 다르다. 분자의 세계에서는 엄청난 재산이나 권력을 움켜쥔 거부나 독재자가 없다는 뜻이다.

만약 분자의 세계가 평등하다면 어떻게 될까. 상온에서 평균 에너지보다 11배의 에너지를 가진 액체의 물 분자는 훨씬 자유로운 기체로 증발할 수 있고, 얼음에 갇힌 물 분자도 평균보다 두 배의 에너지만 비축하면 녹아서 물이 될 수 있다. 볼츠만 분포를 따르는 분자의 세계에서는 언제나 그런 분자들이 있게 마련이기 때문에 빨래가 마르고 얼음이 녹는다.

하지만 분자 에너지가 모두 똑같다면 섭씨 200도가 돼야 얼음이 녹고, 3000도가 돼야 물이 증발한다. 그렇다면 이 지구는 죽음의 빙하 덩어리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니까 신비로운 생명과 조화로운 자연은 모두 분자 세계의 불평등에서 비롯된 셈이다. 분자는 어떻게 그런 볼츠만 분포를 따르게 된 걸까. 상온의 공기 분자는 1초에 50억 번이나 충돌하고, 그때마다 서로 에너지를 교환하기 때문에 분자의 ‘연간 소득’ 은 공평하게 같아진다.

경제학에서 소득의 불균형을 나타낸다는 지니계수로 치면 가장 이상적인 0이 되는 셈이고, 그런 세상에서의 에너지 분포가 바로 불평등한 볼츠만 분포다. 그러니까 자연은 가진 것의 평등함보다는 소득의 공평함을 더 좋아하는 셈이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불평등이 사회를 움직이기 위한 원동력이 될 수 있음은 분자 운동과 비슷하다.

어떤 조직이나 사회에서 엘리트를 선발하고 선발된 엘리트가 조직을 안정적으로 이끌어가는 환경이 돼야 성공할 수 있으나 고착화된 기득권이 문제다. 능력에 따라 선발된 인재가 조직을 이끌어가는 제도를 메리토크라시(meritocracy·능력주의)라고 하는데 이는 영어의 메리트(merit)에서 나온 말로, 선발된 리더가 조직을 안정적으로 이끌어가는 환경이 뒷받침돼야 한다.

자연계에서는 중심(핵)이 없으면 양자도 없고 전자도 없다. 핵을 중심으로 전자가 도는데, 이 또한 자연계 현상이자 원리다. 주인이 없는 회사나 주인이 없는 공공 분야에는 ‘공유지의 비극’이 존재하는 것이다. 리더(핵)가 잘못되면 모두가 무너지는 것이 볼츠만 분포이고 분자의 운동 원리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속담 또한 분자와 원자의 배열과 같은 원리가 인간사회에도 적용된 격언이자 원리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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