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계 보혁갈등에 '절충안' 내놔
교장 자격증이 없어도 경력 15년 이상 평교사가 교장이 될 수 있는 ‘내부형 교장공모제’가 확대된다. 교육부가 예고한 당초 안보다는 후퇴했다. 보혁갈등에 절충안을 내놓은 것인데, 대학수학능력시험과 유치원 방과후 영어수업 유예에 이은 ‘오락가락 정책’이란 지적이 나온다.
교육부는 내부형 교장공모제 참여 학교 비율제한을 현행 신청 학교의 15%에서 50%로 끌어올리는 내용의 ‘교육공무원임용령 일부개정안’이 13일 국무회의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앞선 지난해 12월 교장공모제를 자율학교와 자율형공립고 전체(1655개교)로 전면 확대하는 개선방안을 발표했었다.
보수 성향의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이를 ‘무자격 교장공모제’로 규정해 강하게 반대하자 한 발 물러선 것으로 풀이된다. 교총은 회원 가운데 교장·교감 비율이 높은 단체다.
교총은 이날 “자격증 미소지자가 교장이 될 수 있도록 한 것은 오랜 근무경력과 보직경험 등 학교운영에 필요한 능력과 전문성을 무시한 것”이라며 “무자격 교장공모제 전면 확대가 철회된 것은 교총의 강력한 투쟁과 교육 현장 우려가 반영된 당연한 결과”라고 평했다.
교총은 “(교장공모제가) 사실상 특정 단체 출신을 임용하기 위한 교육감의 코드·보은인사 제도로 전락했다”고도 했다. 진보 교육감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소속 교사를 공모교장으로 앉히는 방편으로 악용할 수 있다는 의구심이다.
전교조는 반박했다. 논평을 내고 “기득권 세력 반발에 후퇴해 어정쩡한 타협에 머물고 말았다. (6·13) 지방선거를 의식한 정치공학적 고려 외에 설명할 길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교육부는 아무런 근거 제시도 없이 비율제한 철폐에서 50%로 뒷걸음친 이유를 밝혀야 한다”고 덧붙였다.
교육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걱세)도 “이익단체인 교총에 의해 좌초된 사례”라고 비판했다. 사걱세는 “교장공모제 적용 학교를 확대한다 해도 일반 공립학교를 제외한 자율학교·자공고의 50%에만 적용돼 전체 공립학교(9955개교)의 1.86%에 불과하다. 착시효과일 뿐, 정책효과는 거의 없다”고 진단했다.
교사노조연맹 역시 ‘톤 다운’ 되긴 했지만 내부형 교장공모제 확대에 힘을 실었다. “50% 비율제한이 아쉽지만 일단 확대를 환영한다”고 했다. 다만 “승진 점수에 의해 임용된 교장이 제왕적 권한을 행사하는 학교 운영체제를 유지한다면 학교는 진정한 민주주주의 교육의 장으로 바로 설 수 없다”고 강조했다.
추진 정책에 대한 논란이 일면 여론을 의식해 기존 입장에서 물러서는 교육부 모습이 재연됐다는 평가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10개월간 벌써 3번째다.
작년 8월 수능 절대평가 전환이 시발점이었다. 교육부는 일부 과목과 전 과목 절대평가안의 두 가지 시안을 놓고 의견수렴 했으나 반대 여론이 일자 1년간 ‘유예’했다. 올 초 유치원 방과후 영어수업 금지 추진도 학부모 불만에 1년간 ‘보류’했다. 이번에는 교원단체 간 찬반이 엇갈리자 ‘절충’을 택했다.
교육 당국은 ‘소통 정책’ 행보로 자위하는 기류도 있으나 이해당사자들은 피로증을 호소하고 있다. 한 교육계 인사는 “자칫 어느 쪽에도 척을 지지 않으려다 양쪽 모두에 욕 먹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 교육부가 철학과 소신을 갖고 일관서 있게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전교조도 “수능 절대평가화 유예, 방과후 영어수업 금지 유예에 이어 내부형 교장공모제 제한 철폐에서도 후퇴하는 모습을 보며 문재인 정부의 빈곤한 교육개혁 의지와 철학을 다시 확인했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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