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컴의 퀄컴 인수 막은 트럼프… "5G 주도권 중국에 못 준다"

입력 2018-03-13 18:17   수정 2018-06-11 00:01

M&A 금지 명령…안보 내세워 중국 압박

"5G 기술 유출 안돼"
브로드컴 싱가포르계 회사지만
중국 화웨이와 특수관계 의심

"중국은 국가안보의 주적"
알리바바의 미국 기업 인수 막고
중국산 철강·알루미늄에 관세

퀄컴·브로드컴 각각 제 갈길로
반도체업계 M&A 주춤할 듯



[ 뉴욕=김현석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460억달러(약 155조원)에 이르는 외국 기업과 미 기업 간 반도체 분야 인수합병(M&A)을 무산시켰다. 외국 기업으로 자국의 첨단기술이 유출될 것을 우려해 내린 조치다. 트럼프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간) 싱가포르계 반도체회사 브로드컴이 미국 통신칩회사 퀄컴을 인수하는 것을 금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반도체업계 4위인 브로드컴은 작년 11월부터 업계 3위 퀄컴을 사겠다며 인수금액을 높여왔다. 최근 1460억달러(부채 250억달러 포함)까지 제시했으나 퀄컴은 1600억달러를 달라고 요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행정명령에 ‘실질적으로 인수와 동등한 다른 어떤 인수 또는 합병도 금지한다’고 적시했다. 그는 “브로드컴이 퀄컴을 사들이면 국가 안보에 위협을 가할 가능성이 있다는 믿을 만한 증거가 있다”고 말했다.

미 재무부 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CFIUS)는 최근 이 같은 맥락의 인수 반대 의견을 내놨다. 브로드컴이 인수하면 퀄컴의 5세대(5G) 이동통신기술 연구개발을 저해해 경쟁사인 중국 화웨이의 시장지배를 허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브로드컴은 싱가포르 기업이지만 세계 최대 통신장비 제조업체인 중국 화웨이와 거래가 많다. 최고경영자(CEO)도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이다.


◆“5G 기술 유출을 막아라”

미국 대통령이 CFIUS의 반대를 근거로 M&A를 막은 것은 지난 30년을 통틀어 이번이 다섯 번째다.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엔 벌써 두 번째다.

사유는 국가안보다. CFIUS는 브로드컴이 인수하면 퀄컴의 5세대(5G) 이동통신기술 연구개발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고 판단했다. 브로드컴이 1000억달러(약 106조6000억원)가 넘는 대출을 받아 퀄컴을 사고 나면 비용 절감에 나설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5G는 모바일뿐 아니라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자동차 등에 적용될 대부분의 미래통신을 구현할 기술로 꼽힌다. 4세대(4G) 기술에 비해 20배 빠른 속도, 10배 많은 동시접속 등을 기반으로 한다.

CFIUS를 잘 아는 소식통은 로이터통신에 “이번 딜이 성사되면 10년 내에 5G 기술에서 화웨이가 시장지배자가 되고, 미국 기업들이 화웨이 제품을 살 수밖에 없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정부는 올초 국가안보전략 보고서에서 중국을 주적으로 규정한 뒤 중국 기업들에 잇따라 규제를 가하고 있다. 알리바바의 금융 자회사인 모바일 결제업체 앤트파이낸셜(알리페이 운영)의 미국 모바일 송금회사 머니그램 인수를 막았다. 조만간 중국 기업들의 지식재산권 침해를 이유로 제재에 나설 것으로도 알려졌다.

미 의회는 한발 더 나아가 CFIUS 권한을 강화하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중국으로부터 미국 기업과 기술, 데이터 등을 보호하려는 전략적 포석이다.

◆세계 최대 IT M&A 무산

브로드컴이 퀄컴에 인수를 제안한 건 작년 11월6일이다. 경영권 프리미엄 28%를 얹은 값인 1300억달러(부채 250억달러 포함)에 사겠다고 했다. 와이파이와 블루투스, 무선주파수(RF)칩 등 각종 통신칩 및 장비를 생산하는 브로드컴은 독보적 이동통신 칩기술을 가진 퀄컴을 인수해 세계 최고 통신칩 회사가 되겠다는 구상이었다.

퀄컴은 몇 년 전만 해도 M&A의 타깃이 될 회사가 아니었다. 스마트폰 시대에 각종 통신칩과 모바일 기기의 두뇌격인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결합한 ‘스냅드래곤칩’을 앞세워 승승장구했다. 매출은 2010년 109억달러에서 2014년 264억달러로 급증했다.

하지만 2016년 한국 1조300억원 등 주요국에서 반독점 과징금을 부과받고, 최대 고객사인 애플과 소송까지 벌이며 주가가 급락했다. 브로드컴은 그 틈새를 파고들어 M&A에 나섰다. 혹 탄 브로드컴 CEO는 지난달 CNBC 방송에 출연해 “퀄컴은 지난 1년간 주가가 11% 떨어졌지만 브로드컴은 6배 올랐다”고 말했다.

퀄컴은 브로드컴의 제안을 거부했다. 회사 가치를 낮게 평가했다는 이유에서다. 작년 12월 브로드컴이 추천한 이사 선임안도 거부했다. 브로드컴은 인수금액을 1210억달러, 1460억달러로 높여 불렀다.

더 나아가 인수자금 1000억달러를 JP모간 등 12개 금융사에서 대출받기로 하면서 적대적 M&A도 위협했다. 이달 6일 예정됐던 퀄컴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을 통해 이사회 이사 11명 중 6명을 차지한 뒤 퀄컴을 인수하는 방안을 노려왔다. 작전은 맞아떨어지는 듯했다. 세계적 의결권 자문기관인 ISS와 글래스루이스는 브로드컴이 추천한 이사 6명 중 4명, 6명 전원을 각각 이사로 뽑을 것을 퀄컴 주주들에게 자문했다.

그러나 주총을 이틀 앞둔 지난 4일 CFIUS가 주총 한 달 연기를 명령하면서 일이 틀어지기 시작했다. 브로드컴은 7일 미 정부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5G 투자 계획을 유지하고, 미국 엔지니어 양성에 15억달러를 쓰겠다”고 발표했다.

12일엔 싱가포르 본사를 미국으로 3주 내에 옮기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 발표 몇 시간 전까지도 탄 CEO는 미 국방부에서 인수 로비를 벌인 것으로 전해졌으나 수포로 돌아갔다. 이번 딜이 성공했다면 세계 정보기술(IT)업계 최대 M&A로 기록될 수 있었다.

◆반도체업계 M&A 잦아드나

브로드컴의 퀄컴 인수 가능성은 사라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행정명령은 인수뿐 아니라 인수와 비슷한 다른 어떤 방법 또는 합병도 금지해 놓았다.

인수 무산으로 양사는 각자 갈 길을 갈 전망이다. 퀄컴은 자동차용 반도체 업체인 NXP 인수를 마무리지어야 한다. 퀄컴은 브로드컴 인수 공격에 최근 NXP 인수 제안가를 당초 380억달러에서 440억달러로 높였다.

이번 M&A 무산은 2015년 이후 급증한 세계 반도체업계의 M&A에도 상당한 파장을 몰고올 것으로 예상된다. 반도체업계에서는 자율주행자동차, IoT, 인공지능(AI) 등 신기술 확보가 시급해지고 투자 규모도 커지면서 일본 소프트뱅크의 영국 ARM 인수(320억달러) 등 초대형 M&A가 빈번했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에 따르면 글로벌 반도체 시장 M&A 규모는 2010~2014년 연평균 126억달러에서 2015년 1073억달러, 2016년 996억달러로 폭증했다. 각국의 기업결합 심사가 지연되고 미 정부가 작년 9월 중국 사모펀드 캐넌브리지캐피털의 래티스반도체 인수 시도를 무산시키는 등 중국 측 M&A 시도를 봉쇄하면서 지난해엔 277억달러에 그쳤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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